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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6학번 서울 공대 선후배, 게임 시장 접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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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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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해 벽두부터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 상단을 연일 장식한 광고가 있다. NHN이 야심 차게 선보인 온라인 게임 ‘테라’의 배너다. 테라는 NHN이 4년 동안 400억원의 개발비를 쏟아부은 대작 게임이다. 이 제작비는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을 통틀어 최대 규모다. 지난해 한국 영화 중 최대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은 ‘황해’로 140억원이 투입됐다.

억만장자들의 게임 삼국지

역대 한국 영화를 봐도 300억원을 쓴 ‘디워’가 최대다. 드라마 중에선 KBS에서 방영된 ‘태왕사신기’가 400억원에 가까웠다. NHN 측은 “국내에서 제작된 콘텐트 중 최고 제작비가 들어간 만큼 기대도 남다르다”고 말했다.
흥행은 기대 이상이다. 1월 8일 오전 서비스가 공개되자 6시간 만에 동시접속자가 10만 명을 돌파했다.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 역사상 최단 기간에 이룬 기록이다. 이날 최고 동시접속자 수는 16만 명을 넘었다.

NHN이 테라를 앞세워 정조준하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이다. 온라인 게임 순위 사이트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아이온은 국내 상용화 온라인 게임 부문에서 출시 이후 10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 1월 17일 테라가 PC방 순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테라의 돌풍이 계속 이어지진 않았다.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이 하루 만에 순위를 역전시켰다.
엔씨소프트는 1월 말 게임 그래픽과 시스템을 대폭 개선한 아이온 2.5 버전을 통해 반격을 준비 중이다.

엔씨소프트와 NHN이 자체 게임으로 승부를 벌이는 반면, 넥슨은 M&A를 통해 업계 1위 수성에 나섰다. 넥슨은 그동안 끊임없는 M&A로 국내 게임판을 키웠다. 2004년 메이플스토리 개발사였던 위젯을 시작으로 2005년 넥슨모바일, 2006년 두빅엔터테인먼트 등을 차례로 인수했다. 2008년 던전앤파이터의 개발업체 네오플을 사들인 넥슨은 지난해엔 더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군주’ ‘아틀란티카’ ‘불멸 온라인’ 등으로 유명한 중견 게임회사 엔도어즈를 삼킨 데 이어 총 싸움 게임인 ‘서든어택’ 개발사 게임하이까지 인수했다. 넥슨은 엔도어즈와 게임하이의 경영권을 가져오는 데 30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였다.

넥슨은 이렇게 인수한 중소 게임개발 업체에 기존 운영 노하우와 해외 네트워크를 입혀 매출을 확대해 왔다. 일례로 넥슨은 네오플 인수를 위해 3000억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가가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던전앤파이터 게임은 넥슨으로 인수된 뒤 매출이 1000억원 가까이 늘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NHN의 2대 주주는 김정주 대표?
흥미로운 건 한국 게임업계의 삼두마차인 3인의 이력이다. 넥슨의 김정주 대표, NHN의 이해진 이사회 의장, 그리고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사장은 모두 서울대 공대 출신이다. 김택진 사장은 전자공학과 85학번이다. 김정주 대표와 이 의장은 컴퓨터공학과 86학번 동기다. 특히 두 사람은 카이스트 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였을 정도로 돈독한 친분을 자랑한다. 창업 초기부터 서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오늘날 국내 최대 게임 부자와 인터넷 부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서울대 출신의 한 벤처 기업 CEO는 “85~86학번이 개인용 PC를 접해본 최초의 학번일 것”이라며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에 가장 먼저 뛰어든 김정주 대표는 1996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온라인으로 게임으로 즐긴다는 개념이 전무했던 시기였기에 ‘바람의 나라’는 국내외에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 시장이 미약했던 당시 넥슨은 시스템통합(SI) 사업도 벌이고 있었다.

당시 김 대표는 친구인 이해진 의장의 요청을 받아 NHN(네이버컴)의 서버 임대 등을 해주는 대가로 NHN의 주식을 확보했다. 취득 원가는 13억5800만원으로 203만8222주를 획득했다. 1월 14일 현재 이 주식은 평가액이 4219억원으로 불어났다. 지분율 4.24%로 최대주주인 이 의장의 지분율(4.64%)에 버금갈 정도다.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사장은 서울대 공대 1년 선후배 사이다. 김 대표는 사석에서 김 사장을 ‘택진 형’이라고 부를 만큼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업에서만큼은 지난 15년 동안 국내 게임 1위를 놓고 한 치 양보 없는 경쟁을 벌여왔다. 김정주 대표가 1994년 넥슨을 설립할 당시 동업자 중 한 명은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사장이었다. 하지만 97년 김택진 사장이 엔씨소프트를 창립한 후 리니지를 개발하면서 개발총괄로 송 사장을 끌어들였다. 김택진 사장은 송 사장과 함께 엔씨소프트를 세계 1위의 온라인 게임업체로 성장시켰다.

두 사람의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김택진 사장은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유명했다. ‘컴퓨터연구회’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등과 ‘아래아한글’을 공동 개발했다. 또 한메소프트를 창립해 도스용 ‘한메타자교사’를 개발하는 등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명성을 떨쳤다. 2007년엔 ‘천재소녀’로 알려졌던 윤송이씨와의 결혼으로 주목 받았다. 최근엔 창원을 연고지로 한 프로야구 9구단 설립 의사를 밝히며 스포츠 업계까지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반면 김정주 대표는 자유로우며 털털한 스타일로 외부 활동엔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회사에서 김 대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경비에게 쫓겨난 일화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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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창업 후 10여 년 동안은 CEO 자리도 맡지 않았다. 심지어 전문경영인 밑에서 팀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취미 활동에서도 이는 잘 나타난다. 연극을 좋아한 그는 극단 ‘독’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음향·조명 등의 실무를 담당했다.

경영 스타일도 각양각색
경영 방식도 다르다. 김택진 사장은 꼼꼼하고 치밀하다. 아이온도 개발 기간 내내 직접 챙겼다고 한다. 김택진 사장이 선호하는 게임은 ‘리니지’와 ‘아이온’처럼 게임성과 흥행 성적이 뛰어난 대작 중심이다. 지금도 국내에서 대작들을 선보이는 게임 개발사엔 엔씨소프트 출신 개발자들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김정주 대표는 대부분의 일을 직원들에게 믿고 맡긴다. 실무진에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기에 넥슨은 M&A 때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지난해 게임하이를 인수할 때였다. 넥슨은 게임하이가 CJ인터넷 컨소시엄과의 매각협상이 결렬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실무진을 중심으로 인수 협상 테이블을 꾸렸다. CJ인터넷이 난색을 표한 게임하이의 요구도 적극 받아들였다. 실무자들에게 전권이 맡겨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정주 대표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추구하는 캐주얼 게임을 선호한다. 넥슨은 앙증맞은 자동차 경주게임 ‘카트라이더’를 비롯해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퀴즈퀴즈’ 등 깜찍한 캐릭터와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으로 어린이와 여성 팬이 많다.

동종 업계였지만 서로 다른 영역에서 판을 키웠던 이들은 최근 그 영역이 허물어지면서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넥슨과 NHN이 엔씨소프트 영역으로 여겨지던 MMORPG 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엔씨소프트도 캐주얼 게임 시장에 뛰어들었다. 세 기업 모두 중국과 일본은 물론 북미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국내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MMORPG, 캐주얼 게임, 게임포털 등 암묵적으로 영역을 나눠 활동했던 이들이 상대 업체가 강점을 가진 분야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며 “게임산업 자체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용석 기자 sonc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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