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의 ‘춘절 정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사진) 중국 국가주석이 춘절(春節·설) 명절 분위기를 활용해 인상적인 서신(書信) 정치를 하고 있다.

대만 국민에게 호감도를 높이는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정치적으로 긴장 관계인 장쩌민(江澤民·강택민) 전 주석을 비롯한 공산당 원로들에게 건강과 장수를 비는 메시지를 띄웠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복건일보(福建日報)는 1일 “후 주석이 지난달 발효된 양안(중국·대만) FTA로 인해 값싼 중국 농산물들이 대만 시장을 휩쓸 것이란 대만 농민들의 두려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편지는 푸젠(福建)성 장푸(漳浦)·장핑(漳平)에 설립된 대형 농업단지인 ‘대만농민 창업원(創業園)’에서 후 주석에게 보낸 신년 인사에 대한 답신 성격이다.

대만 연합보(聯合報)는 “2003년 취임 뒤 후 주석이 대만의 민간기구에 보낸 첫 공식 서한”이라고 평가했다. 후 주석은 지난해 설에도 이곳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등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양안 농업협력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통일의 기초가 되는 양안협력 사업을 독려하며 중국·대만을 아우르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후 주석은 서신에서 “이 단지의 발전은 양안의 농업협력이 무한한 잠재력이 있으며 대만 농민들이 대륙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치하했다. 그러면서 “대만 농민들이 자주 대륙에 와서 일가 친척들을 만나며 대륙 시장을 연구하고 사업 기회를 잡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중국에서 춘절은 넓은 대륙에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이는 큰 명절이다. 이런 명절 분위기를 업고 대만 농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대만 전체 국민에게 신년 인사를 한 것이다.

주홍콩 총영사관 전가림(호서대 교수) 선임연구원은 “강력한 양안 협력과 대만 독립 주장이 상존하는 대만 민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호감을 키울 수 있는 고도의 통일 전술”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은 올해 대만에 대한 유화 공세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홍콩 분석가들은 “이 편지를 통해 내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대륙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국민당 정부를 측면 지원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 주석은 또 장 전 주석 등 공산당 원로 77명에게 새해 인사를 전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후 주석이 장 전 주석 등 ‘오랜 동지(老同志)’들에게 지난달 31일 새해 인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후 주석이 ‘건강하게 장수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후 주석이 직접 방문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올해 85세인 장 전 주석은 지난해 상하이(上海) 엑스포 현장을 참관한 이후 공식 행사에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고령에 따른 와병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후 주석은 리펑(李鵬) 전 총리, 완리(萬里) 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차오스(喬石) 전 부총리,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등에게 인사를 전했다.

베이징·홍콩=장세정·정용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