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1월 19일자 4, 5면
‘매일 사건 기록을 잔뜩 들고 퇴근하는 24년 외길 판사’.
31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된 이정미(49·여) 대전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선후배 법관들의 평이다. 이 내정자는 1987년 대전지법 판사로 임관한 뒤 법관의 길을 걸어왔다. 20여 년 판결을 해왔지만 ‘튀는 판결’은 찾기 어렵다. 주로 민사 재판을 맡았었다. 그와 연수원 생활을 함께했던 한 판사는 “지금까지 어떠한 이념적 성향도 내비친 적이 없다”며 “대외 활동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재판만 해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헌재 재판관이 된다면 ‘비(非)서울대 법대 출신의 40대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변화를 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 부장판사는 “이강국 소장을 비롯해 ‘서울대 법대 출신 남성’ 9명만 있던 헌재에 이 내정자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역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그를 헌재 재판관으로 지명한 배경을 밝히면서 이런 점을 부각시켰다. 대법원은 “헌재의 기능과 역할을 고려해 소수자 보호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적절히 대변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인지를 인선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달 17일 대법관 후보 4명이 전원 ‘서울대 법대 출신 남성 고위 법관’으로 추천된 뒤 대법관 중 3분의 1이 여성인 미국 등과 비교되며 비판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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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도 2003년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어 두 번째로 여성이 재판관으로 지명됐다는 점을 환영했다. 박준희 헌재 공보관은 “양성 평등과 여성의 기본권이 주요 쟁점이 될 때가 많다. 여성 재판관이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논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산모에게 제왕절개 수술의 위험성을 미리 설명하지 않아 산모가 후유증으로 숨졌다면 의사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 임대아파트의 하자 보수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에 대한 판결 등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그는 재판관으로 지명된 뒤 “만약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이 땅의 소수자 인권과 여성의 인권보호 및 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내정자는 숙명여대 경제학부 신혁승(50) 교수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구희령 기자
◆헌법재판관 임명은=국회에서 선출하는 3명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을 포함해 재판관 9명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