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터의 '사계' 15년만에 새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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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의 선율로 시작하는 최고의 팝 클래식으로 손꼽히는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四季)'에 대한 한국 음악팬들의 사랑은 각별하다. 커피, 감기약, 공기청향제의 광고음악으로 사용된 것은 물론 가수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에서는 '겨울' 중 2악장이 흐른다. 엘리베이터, 레스토랑, 호텔로비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무드음악이기도 하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생전에 무척 아꼈던 독일 출신의 세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36.사진)가 15년만에 '사계'를 다시 녹음한 새음반(DG)을 내놓았다. 10명의 현악기 주자로 구성된 트론하임 솔로이스츠와의 협연으로 무터가 독주는 물론 지휘까지 맡았다.

때를 같이 하여 그녀가 84년 카라얀 지휘의 빈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녹음해 전세계적으로 1백만장 이상 팔려나간 음반(EMI)도 다시 선보였다.

빈필과의 녹음이 숙성된 레드 와인이라면 이번 새 녹음은 상큼한 샴페인 맛에 비길 수 있다. 실내악으로 편곡된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나 할까. 바이올린 협주곡을 실내악으로 편곡한 것처럼 정제돼 있지만 때로는 독주악기와 현악합주가 한데 뒤섞여 다소 혼란스럽다.

42년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베르나르디오 몰리나리가 독주자로 녹음한 SP로 첫 선을 보인 '사계' 음반은 지금까지 모두 2백종이 넘게 나왔다. 그런데도 '사계'를 다시 녹음하는 까닭은 뭘까.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곡을 연주기량의 시험무대로 여기는데다 내로라하는 편곡자들도 이 곡으로 실력 발휘를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무터의 새음반도 악기편성에 변화를 준 새로운 해석임에 분명하다.

'사계'는 바이올린 대신 트럼본.플루트.리코더.마림바 등을 독주악기로 내세운 것은 물론 플루트와 아코디언, 금관5중주, 재즈 피아노 트리오, 일본의 고토(琴) 앙상블, 피아노 듀오 등 20종이 넘는 편곡 음반으로도 나와있다.

★노트〓 '사계'는 비발디의 '화성과 창조의 시도 작품 8'중에 수록된 4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각각 3악장으로 구성된 독립된 작품이다.

서양음악사에서 순수한 기악곡으로는 최초의 표제음악이며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등 자연을 노래한 낭만주의 음악의 효시라는 점이 인기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무런 설명 없이 들어도 계절의 추이를 짐작할 수 있는 곡이다.

여기서 바이올린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창공을 날다가 빗방울을 뿌리기도 하고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으로도 변신한다.

하이든은 이 작품에 감명을 받아 오라토리오 '사계'를 작곡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도 내년 한국 연주자로는 처음으로 토스카나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사계' 레코딩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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