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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미디어 산업 성장 견인차 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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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변상규
호서대 교수·뉴미디어학과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말 4개의 종합편성채널(종편)과 1개의 보도전문채널을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방송업계·학계·시민단체·정치권 등 이해관계자들의 찬반 논쟁이 있었다. 승인 이후에도 정부의 지원 필요성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이 가진 영향력을 생각하면 논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종편 선정은 1991년 SBS 출범 이후 방송시장의 최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치른 사회적 비용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이제부터는 국민경제가 보유한 한정된 재원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편을 기대 이상의 수확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되며, 초심으로 돌아가 종편 사업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도 있다.

 최근 미디어 산업에서도 생산과 유통이 분리되는 현상이 보편화되면서 네트워크보다는 콘텐트 산업으로 주도권이 옮겨가고 있다. 부(富) 역시 콘텐트 부문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를 ‘네트워크의 가치 중립화(또는 Dump Pipe화)’라 부른다. 스마트폰 열풍의 뒤에는 이런 움직임이 명백히 내재돼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미디어 정책은 기술발전의 결과물인 위성방송, 지상파·위성 DMB, 와이브로 등 물리적 네트워크 구축에 치중해 온 측면이 크다. 유료방송들은 매체별로 특화된 콘텐트를 개발하는 대신 인기 채널들을 공유하고 지상파 콘텐트의 재전송에 주력해 왔다. 이 때문에 플랫폼은 늘었어도 같은 콘텐트가 반복 전송되는 ‘네트워크의 낭비’ 문제가 제기돼 왔다. 유료방송 출범 15년이 넘었으나 지상파 3사의 콘텐트 지배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그런데 종편채널(PP)은 콘텐트를 송출하는 유통업체가 아니라 공급하는 사업자다. 시청자에게는 콘텐트의 공급자이고, 외주제작사들에는 큰 수요자가 된다. 종편의 등장은 미디어 정책의 큰 흐름이 네트워크에서 콘텐트 제작으로 바뀌고 있음을 상징한다.

 관건은 재원이다. 1997년 세계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국내 대기업들은 운영하던 영화·오락 채널들을 매각하고 PP 산업에서 철수한 사례가 있다. 또 숫자로는 175개(2009년 8월 기준)에 달하는 국내 PP 산업의 영세성은 유료방송 콘텐트 경쟁력에 가장 큰 걸림돌이 돼 왔다. 연간 운영비용이 지상파 대형 드라마 한 편 제작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력 채널들이 수두룩하다.

 방통위는 종편 사업자당 연간 운영비를 3000억원으로 산정해 그 이상을 자본금 규모로 제시했다. 그러므로 출범 초기부터 미디어 산업에 최소 1조원의 재원이 추가 투입되고, PP 속성상 대부분이 콘텐트 제작에 들어갈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연간 방송콘텐트 제작비용(1조원, 2009년 기준)과 맞먹는 수준이다. 메마른 펌프에 미리 물 한 바가지를 부으면 물을 콸콸 쏟아내는 추억 속 펌프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이를 마중물이라 하는데, 마찬가지로 종편을 미디어 산업을 키우는 마중물로 활용해야 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종편 사업자를 합쳐 1500~2000명 수준의 신규 고용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방송사가 대기업보다 선호되는 고급 일자리로 통한다. 특히 산업연관 분석을 해 보면 방송 산업의 1명은 타 산업에서 2명의 고용을 유발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를 고려하면 총 4500~6000개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고 볼 수 있다. 국민경제적으론 매년 7600억원의 부가가치가 추가로 창출돼 경제(GDP)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종편 숫자가 4개로 결정되면서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과거 홍콩 영화산업이 홍콩 관객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고 지금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해외로 뻗어가고 있듯이 종편도 국내 시장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높은 문화 수준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성공하는 콘텐트 혹은 사업자는 해외시장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재원은 예정대로 투입되기 시작한다. 이를 우리 미디어 산업이 한 단계 뛰어오르는 기회로 삼기 위해 지혜를 한번 더 모아야 할 때다. 현 시점에서 종편의 성공을 누구도 장담하기는 어렵겠지만, 실패할 경우 콘텐트 강국을 향한 호기가 다시 오기 힘들 것이라는 점은 단언할 수 있다.

변상규 호서대 교수·뉴미디어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