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입덧 덜하는 임산부가 유산할 확률 훨씬 높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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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인간의 진화를 보여주는 개념도. 인간의 유전자 안에는 35억년 전 태동된 생명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 몸은 석기시대』저자는 “진화의 과정을 추적하면 건강한 삶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몸은 석기시대
데트레프 간텐 등 지음
조경수 옮김, 중앙books
304쪽, 1만5000원

돌멩이 쪼고, 조개무지를 쌓던 시대의 얘기가 아니다. 산과 강을 누비던 원시인 예찬론도 아니다. 진화론을 한가운데 놓고 현대인의 건강·질병 문제를 짚어본 교양과학서다. 무엇보다 어느 쪽을 펴든 정보와 재미가 가득하다. 몇 가지 맛보기를 소개한다.

 부패한 동물시체를 보았다고 치자. 십중 팔구 코를 찡그리고 시선을 돌릴 것이다. 왜? 시체 속의 병원균이 몸에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서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자, 유전자의 지시다. 바로 진화의 결과다.

임산부의 통과의례 같은 입덧은 어떤가. 입덧은 식물성·세균성 독소로부터 태아를 보호하려는 보호 메커니즘이다. 독소를 막음으로써 유산과 기형이 줄어들게 된다. 역시 진화의 장점이다. 입덧이 약한 임산부는 심한 임산부보다 유산할 위험이 세 배나 크다고 한다. 아이들의 수학점수를 높이려면 학원보다 운동이 효과적이다. 안에만 갇혀 있는 아이들은 집중력과 공간 지각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이 부족하면 유전자도 게을러진다. 실컷 움직이지 못한 아이들은 신체는 물론 정신 발달이 저해된다.

 이쯤 되면 이 책의 골격이 드러난다. 과학상식을 나열한 것 같지만 논지가 튼튼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풍부하다. 요즘 학계의 대세인 진화론(진화사회학·진화심리학·진화생물학 등등)에 현대의학의 주요 성과를 접붙였다. 이른바 진화의학이다. 용어는 어려워 보여도 핵심은 명료하다. 진화를 알면 우리가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초의 단세포생물에서 현재의 인류까지 35억년 가까운 진화의 역사에서 현대사회가 등장한 건 100여 년에 불과한데, 즉 우리의 몸은 석기시대쯤에 머물러 있는데 사회·경제적 여건이 급변하며 빚어지는 ‘몸과 환경의 마찰음’을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암에는 진화와 생명의 메커니즘이 있다. 암은 매우 오래된 질병이다. 1억5000만년 전 공룡뼈 화석에서 종양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데 원시시대보다 현대사회에 암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일단 늘어난 수명을 들 수 있다. 사람의 평균수명이 40년이 안됐을 때는 종양세포가 암으로 발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가장 큰 원인은 현대인의 생활방식이다. 20세기 중반 급증한 폐암의 경우 담배의 대량생산, 즉 흡연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책에는 비만·고혈압·당뇨병 등 각종 질환과 진화의 연결고리가 자세하게 그려진다. 비듬·대머리·털·피부·비타민 등의 순기능·역기능을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세포생물학·분자의학의 최신 동향을 풀어내는 솜씨가 야무져 과학 문외한도 즐겁게 따라갈 수 있다. 인간 진화의 생생한 드라마를 알고 싶으면 『내 안의 물고기』(닐 슈빈 지음, 김영사)도 참고하시길!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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