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하청업체 근로자 고용과 복지까지 책임지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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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1공장 도어 탈부착 공정 현장. (2010.11.19. 연합뉴스)


'대기업은 하도급 업체의 근로자를 노사협의회에 참여시키고, 하청업체 근로자는 대기업에 직접 고용문제와 근로조건 향상을 요구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단기 집중추진과제로 삼아 올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책의 주요 내용이다. 고용부는 원·하도급 노사간 대화분위기를 진작시키고, (대·중소기업 간의)공정한 노사관계를 형성토록 하기 위해 하도급 업체의 근로자 대표가 원청업체의 노사협의회에 참여토록 유도해 나가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공개된 방안에 따르면 사내하청 관련 노사분쟁을 예방하고, 원·하청간 사회적 책임을 논의하는 기구로 기업별 노사협의회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박재완 고용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14일 이런 내용이 담긴 2011년도 업무계획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는 대통령 보고 다음날인 15일 노사관계발전위원회에서 이 방안을 전격 공개했다. 노사관계발전위원회는 지난해 8월 제정된 노사관계발전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구성된 정부 산하 위원회이다. 노·사 대표와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행정안전부·지식경제부 국장급, 학자 등 14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경영계는 "정부의 계획은 사실상 대기업이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경영사정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사협의회에서는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인사정책은 물론 신기술도입과 같은 경영계획 등 기업의 기밀까지 논의한다. 그래서 노사협의회 참석자에게는 비밀유지 의무가 법으로 부여돼 있다.

고용부 측은 이를 대기업에 강제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했다.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노사협의회 문호를 열도록 행정지도를 해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용부 관계자는 "필요하면 하청업체 사용자 대표도 근로자 대표와 함께 원청업체 노사협의회에 참여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이를 위해 일선 노동관서의 근로감독관 등을 통해 사업체를 행정지도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권유'의 수준을 넘어 고용부가 직접 나서 원·하청 노사간 협의회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얘기다.

노사협의회는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이하 근참법)에 따라 분기당 1회 이상 반드시 열어야 한다. 협의회에서는 근로자 대표와 사용자 대표가 참여해 고충처리와 복지수준 향상, 경영참여방안 등 고용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안을 폭넓게 심의하고 의결한다. 따라서 고용부의 구상대로라면 사업장 내에서만 운영되던 노사협의회가 대기업 협력업체로까지 문호가 개방돼 사실상 '대기업 광역형 노사협의회'로 확장되는 것이다.

온라인편집국=김기찬 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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