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 전성시대…노래와 영상 주객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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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20년전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 고 외친 버글스의 노래는 라디오를 누르고 등장한 뮤직비디오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어릴 때부터 TV를 벗삼아 자라온 영상세대가 문화 소비의 주력부대로 등장하고, 케이블 방송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가 지원 사격을 시작하면서 뮤직비디오는 빠른 속도로 라디오의 영토를 정복하고 있다.
'라디오 앞에서 기다리다가 원하는 음악이 나올 때 녹음 버튼을 누르던 기억들이 이젠 리모컨으로 뮤직비디오를 녹화하는 풍경으로 바뀐 것이다.

음악전문 케이블 채널인 m.net에서 올해 국내 최초로 뮤직비디오 시상식을 마련했고 미국의 경우 MTV에서 주관하는 뮤직 비디오 시상식의 위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오히려 음악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그래미상보다 음반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더 크다.

'최근엔 '3테너' '사라 브라이트만' '파바로티와 친구들' '바네사 메이' 등의 라이브 공연실황을 담은 클래식 뮤직비디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뮤직비디오의 역사

24시간 뮤직비디오를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인 MTV가 81년 8월1일 개국한 것이 뮤직비디오의 시작. '하지만 '재즈싱어' 나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의 뮤지컬 영화, 디즈니영화 '판타지아' 에서 뮤직비디오의 기미가 엿보였고 TV가 팝뮤직의 홍보수단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초기에 제작된 뮤직비디오는 적은 제작비로 인해 저급한 수준이었으나 이후 80만달러를 들여 제작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등이 음반 홍보수단으로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제작붐이 일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70년대 TBC의 '가요산책' 을 비롯해 91년 SBS 개국과 함께 마련됐던 '가요데이트' 등에서 과수원 등 야외에서 노래하는 【痔?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제작 방영한 것이 효시 하지만 기술적인 면에선 노래방의 영상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95년 케이블 채널인 m.net과 KMTV가 개국하면서 뮤직비디오 제작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 상업적 속성

뮤직비디오는 한마디로 '광고' 그 자체다. 매니지먼트사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는 가수들의 앨범 홍보물이다. 대부분의 뮤직비디오에서 가수가 영화의 주인공이나 영웅처럼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점에서 보면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에선 24시간 광고물을 내보내고 있는 셈이다.

◇ 실험성

상업적 태생임에도 뮤직비디오에는 노래와 영상을 바탕으로 한 나름의 논리와 어법이 있다. 4~5분의 짧은 시간도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기엔 안성마춤. 그래서 '실험성' 과 '다양성' 은 뮤직비디오 발전의 두 축으로 작용한다.
미국에선 뮤직비디오가 영화나 광고계 신인 감독들의 데뷔무대다. 때론 다다와 초현실주의에 가까운 기법도 구사한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 예스의 '오너 오브 어 론리 하트' , 듀란듀란의 '와일드 보이즈' . 할리우드식 공포.서스펜스.SF도 영화의 혼성모방 등 다양한 뮤직비디오를 선보인다.

◇ 음악의 시각화

뮤직비디오는 노래에 대한 시각적 해석이다. 또 갑작스런 커팅.인터커팅.겹침 등의 비디오 테크닉으로 눈길을 끌어야 한다.
클래식이나 헤비메탈 공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실황을 다양한 카메라 워킹으로 잡아낸 것도 있지만 특정 가사와 관련해 '전쟁은 잘못된 것이다' '사회생활(또는 성생활)은 어차피 경쟁이다' 등의 메시지를 시각화하기도 한다.

◇ '드라마타이즈' 열풍

요즘 선보이는 국내 뮤직비디오들은 단편영화나 드라마를 방불케한다. 홍콩이나 일본을 배경으로 지명도가 높은 청춘 스타가 등장하고, 총격전과 함께 비극적인 사랑이 그려진다.

발라드 음악과 드라마 형식이란 '궁합' 을 제대로 집어낸 것. 하지만 조성모의 '투 헤븐' 이 성공을 거두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새로 내놓는 뮤직비디오마다 천편일률적으로 드라마 형식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댄스음악까지도 드라마 형식을 따르는 분위기다.

또 뮤직비디오의 특성상 한번 촬영하면 반복해서 방영된다는 점이 연기자들에게도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한다.
김지호(신성훈의 '그후로 오랫동안' ).김남주(이승환의 '다만' ).김현주(김현철의 '일생을' ).장혁(G.O.D의 '어머니께) 등이 뮤직 비디오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대표적인 경우다.

◇ 무엇이 문제인가

매니지먼트사에서 제작을 의뢰하는 만큼 '홍보물' 이란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다. 때문에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는 감독에게 제작을 맡기기엔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 이러다 보니 일부 흥행 감독에게만 제작 요청이 밀리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고, 제작자는 의뢰인의 요구대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를 찍어 내느라 바쁜 형편이다.
'다양성' 도 없고 '실험성' 도 놓치는 국내 뮤직비디오 제작 시장의 현주소이다.

◇ 이미지의 창조

시청자에게 쉽게 다가간다는 이유로 스토리 텔링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음악적 상상력을 오히려 반감시키고 주객이 전도되는 결과마저 낳을 수 있다. 뮤직비디오는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대중' 만 있고 '문화' 는 없는 '절름발이' 가 돼가고 있다. 이러다가 댄스 음악 이외에는 모두가 '비주류' 로 취급당하는 가요계의 서글픈 모습을 빼다박는 건 아닌 지 모르겠다.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다양한 창작 시도들을 지원해주진 못할 망정 '유행' 이라는 잣대로 아예 싹을 틔울 토양마저 황폐화시키는 일은 없어야 겠다. '실험성' 과 '다양성' 에 바탕한 변화만이 뮤직비디오의 발전을 보장한다.
'스토리 텔링' 보다 이미지를 창조해 과감하게 승부를 거는 시도들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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