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불편한 대신 풍부한 감성 얻었죠 장애? 튀잖아요 그걸 즐기면 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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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7시 첫 출근길. 어머니는 아들이 염려됐다. 그러나 걱정보단 격려를 해줘야 했다. 그래서 말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열심히만 해라. 착하고 성실하게. 이 두 가지만 지키거라. 그러면 문제될 게 없다”고.

 전우영(24·사진)씨. 그는 지체장애 3급이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기 직종인 카피라이터다. 지난해 말 100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합격자 세 명 중 한 명이다. 그것도 제일기획에 이은 업계 2위 광고회사 이노션에 당당히 입사했다. 첫 출근날엔 팀 발표가 있었다. 그래서 오전 5시까지 마무리 작업을 했다. 두 시간도 못 잤다. 오후 3시 발표 시간, 주제는 ‘소형차 엑센트의 광고 프로모션 만들어 보기’. 동기들과 한 팀을 이뤄 발표에 나섰다. 3주 전 합숙연수 시작 때 “나는 발표에서 빠지면 안 될까”라고 제안했다. 동기들에게 누를 끼치기 싫었다. 하지만 “무슨 소리냐. 네가 카피를 다 썼는데 네가 제일 잘 안다”는 격려에 20여 분의 프레젠테이션 중 5분간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스토리보드(TV 광고 각 장면을 한 장면씩 그림으로 표현한 것)를 가리키며 또박또박 힘주어 천천히 말했다. “우리 매력녀는 이렇게 걸어갑니다. 우리 영가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타라고 합니다.” 매력녀와 영가이(young guy), 이런 표현에 긴장됐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안건희 사장과 정성이 고문이 웃음을 터뜨렸다.

 전씨는 어릴 때부터 영상과 글에 대한 욕심이 컸다. 광고란 광고는 모조리 찾아봤다. 영화는 한 편당 5~6번 이상 봤다. 보면서 명장면과 명대사를 메모했다. 모두 좋은 카피의 재료였다. 메모장 대신 가계부에 감성 일기를 썼다. 그간 정리한 감성 일기는 12권. 방 안에 장르별로 정리해 놓은 영화 DVD가 700여 편 쌓여 있다.

 부모는 그를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키웠다. 정규 학교로 보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가톨릭중학교와 국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국내에서는 단국대 죽전캠퍼스 언론홍보학과를 나왔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야 자신이 남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처음 인식했다. 입학 첫날, 온 학교 학생들이 교실 밖에 몰려와 “쟤야, 쟤” 하며 구경하던 장면은 그의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전씨는 “몸이 불편한 대신 남들보다 훨씬 풍부한 감성을 얻었다”며 “앞이 보이지 않으면 청력이 아주 발달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는 긍정적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가 더 쉬워요. 일단 튀잖아요. 튀고 싶지 않아도 튈 수밖에 없는 게 운명이라면, 그걸 즐겨보면 좋지 않을까요.”

 카피라이터는 여러 분야가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원활한 팀워크가 필수다. 이노션은 전씨를 뽑을 때 이 점을 걱정해 약간 망설였다. 하지만 전씨가 3개월여간 이 회사에서 인턴을 할 때 함께 일했던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채용을 결심했다. 이진형 인사팀장은 “엉뚱하면서 자존심 강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 모두 전씨를 채용하자고 했다. 이 중 한 명은 외국 출장 중인데도 꼭 전씨를 뽑아 달라고 국제전화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휘를 고르는 탁월한 능력 외에도 그와 함께 있으면 좋은 기운을 받는 것 같다는 게 직원들의 평가”라고 소개했다.

 전씨에겐 분명한 목표가 있다. “훌륭한 카피라이터에겐 창의력보다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 이해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좀 유리한 것 같아요. 광고 카피는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딱딱하고 상업적인 글이지만, 여기에 훈훈함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그다.

글=최지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광고회사 이노션의 눈길을 사로잡은 전우영씨 광고 카피들

■ 문제 : 구부정한 할머니가 언덕길을 내려가는 사진을 보여주며 어떤 제품 광고인지, 카피는.

제품 : 아웃도어스포츠웨어 브랜드

광고카피 : 그녀의 도전은 어디서나 가능하다.

■ 문제 : 3D TV 광고가 주는 입체감을 실감나게 표현할 것.

광고카피 : 별을 따달라는 그녀에게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물어보세요. “그거면 돼?”

◆카피라이터=광고에 나오는 문구가 ‘카피(Copy)’이며 카피라이터는 이를 작성하는 사람이다. 광고 제작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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