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내가 개헌을 먼저 얘기하면 음모니 공작이니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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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5일 복지담당 공무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했다. 이 대통령이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오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조문규 기자]


“당은 25일에 개헌 의총을 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밤 청와대 인근의 서울 삼청동 안가(安家)에서 열린 당·정·청 수뇌부 비공개 만찬회동에서 이렇게 물으면서 개헌 얘기를 먼저 꺼냈다고 한다. 그런 다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말기에 ‘원포인트 개헌(대통령 5년 단임제인 권력구조만 손질하는 개헌)’을 제안했던 사례를 떠올리며 개헌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나는 (대통령) 후보 때부터 시대에 맞춰 개헌을 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권력구조만 갖고 정략적으로 하는 건 반대라고 주장해 왔다. 지난 정부 말기 때처럼 차기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으로 ‘원포인트’로 권력구조에 손대는 정략적 개헌을 해서는 안 된다. 개헌을 하려면 기후변화·남북관계·남녀평등 등까지 감안해 새로운 시대상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며칠 전 한 일간지 사설이 잘 써 놨더라. 내 생각이랑 같다”고 했다. 그 사설의 골자는 ‘올해가 개헌할 마지막 기회이며, 땜질식 부분개헌이 아니라 21세기 정보사회에 따른 정보기본권·지방분권 등에 걸맞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수용하는 전면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권력구조에 대해선 “나는 (대통령) 중임제든, 분권형(대통령이 외교·안보·국방 분야를 맡고 국회에서 뽑는 총리는 행정을 책임지는 형태)이든, 내각제든 상관없다. 그건 국회에서 알아서 하라. 개헌한다고 내가 (대통령을) 한 번 더하는 게 아니지 않나. 나라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 개헌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개헌을 위해 직접 나설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가 개헌을 먼저 얘기하고 싶어도 ‘음모’니 ‘공작’이니 할 것 아니냐. 그러니 당이 중심이 돼 국회에서 논의해 달라”고 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함께 자리한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정진석 정무수석에게 “청와대는 일절 개헌에 대해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개헌 발언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가 25일 “대통령의 23일 만찬 말씀은 원론적인 것”이라며 “개헌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이고, 청와대는 거리를 둔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만찬엔 한나라당에서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심재철 정책위의장, 원희룡 사무총장 등 당 4역(役)이, 정부 측에선 이재오 특임장관이 참석했다. 이 장관이나 안 대표, 김 원내대표 등은 개헌론자들이다. 이 대통령은 2009년 8·15 광복절 축사에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개헌에 대한 희망을 피력했다. 하지만 이후 이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줄 수도 있는 논란을 촉발할까 봐 개헌 얘기를 하는 걸 자제했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 지도부 앞에서 먼저 개헌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한 만찬 참석자는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정효식·남궁욱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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