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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 교사와 불량 정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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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정치인은 낯이 두껍다. 부끄러워할 줄을 모른다. 자신들은 샥스핀을 먹으면서 3000원짜리 공짜 점심 논쟁을 한다. 급식·의료·보육 3종 무상 패키지 싸움을 보면 세금 낼 기분이 싹 가신다. 보편적이니, 선별적이니 하는 말로 표(票)를 저울질한다. 밥값은 주인이 내는데 생색은 머슴이 내려는 꼴이다. 그런 머슴에게 주인은 꼬박꼬박 세비(歲費)를 준다. 그런데 주객(主客)이 바뀌었다. 머슴이 주인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다. 민생법안을 내팽개쳐도 잘리지 않는다. 4년간 고용해야 하는 주인만 울화통 터진다. 교원평가 문제 하나만 예로 보자.

 이 추운 겨울, 샐러리맨의 출근길은 고달프다. “왜 우린 방학이 없느냐”며 자조도 한다. 선생님들은 이런 심정 잘 모른다. 겨울·여름방학이 석 달이나 된다. 1년에 1주 휴가를 갈까 말까 하는 직장인에게 선생님은 딴 세상 사람이다. 방학 내내 아랫목을 지켜도 월급은 꼬박 나온다. 그런데 힘들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는 된다. 말 잘 듣지 않는 남의 자식들을 가르치자니 얼마나 고생이 심하실까. 체벌금지에, 학력경쟁에, 잡무에, 학부모 극성에…. 게다가 정부와 교육청이 딴 주문을 하니 피곤하실 게다. 권위도 떨어졌다. 그런데 평가까지 받으려니 죽을 맛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원평가는 반쪽 제도다. 국회가 입법화를 해주지 않아서다. 벌써 5년째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시·도 교육규칙으로 시행했지만 평가 자체가 허술하다. 그나마 평가를 반대하는 친(親)전교조 성향 교육감들은 올해는 법적 근거를 들먹이며 거부할 태세다. 그러자 당정이 급해졌다. 대통령령의 ‘교원연수규정’에 교원능력평가 항목을 신설, 시행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땜질이다. 교사가 버티면 그만이다. 제재할 수단이 없다. 지난해엔 전체 교사의 11.3%가 거부했다. 입법화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교원평가를 망가뜨리는 장본인은 불량 정치인들이다. 말로만 공교육 강화를 외칠 뿐 실제론 공교육을 좀먹고 있다. 교원평가제는 2000년부터 추진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민주당이 주도했다. 당시는 한나라당이 트집을 잡았다. 지금은 거꾸로다. 민주당이 입법화에 딴죽을 건다. 정치참여를 하겠다는 교원단체의 표가 무서운 모양이다. 웃기는 일이다. 그런 사이 교사들은 따뜻한 아랫목에 안주했다. 온기를 박차고 나올 용기를 잃었다. 한파가 두려운 것이다. 교사를 이렇게 만든 것은 정치인들이다. 자신들도 학부모인데 한심한 일이다.

 훌륭한 선생님은 격려하고, 뒤처지는 선생님에겐 자극을 주자는 것이 교원평가제다. 선진국은 교사 실력을 엄격히 평가한다. 심지어 북한도 한다. 여야는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 잘 가르치자는데, 왜 주판알만 굴리는가. 불량 딱지를 떼려면 다음 달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꼭 처리하시라. 미국처럼 대통령이 직접 “무능 교사는 교단을 떠나라”며 나서도 좋다. 그리고 올해부턴 제대로 평가하자. 국민이 박수칠 것이다.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