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오니기리’ 전략으로 위기 넘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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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현 도요타시에 있는 쓰쓰미(堤)공장에서 도요타 직원이 강화된 품질관리 기준에 따라 생산 중인 자동차를 점검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 제공]

“아니, 저 하얀 끈은 뭐야?”
지난해 11월 초 일본 아이치(愛知)현 모토마치(元町)의 도요타 자동차 공장을 찾은 아시아 7개국의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모토마치 공장은 도요타의 주력 모델인 크라운을 비롯해 마제스타·마크X·에스티마 등을 생산하는 간판 공장. 그런데 그 공장의 품질 관리시스템은 원시적으로 변해 있었다. 초현대식으로 움직이던 이 공장의 품질관리 공정은 지난해 리콜 사태 이후 180도 바뀌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작업 중인 종업원 바로 옆에 있는 하얀 줄. 이름하여 ‘히모(끈) 스위치’다.

원리는 간단하다. 작업 중 이상이 발생하거나 발견되면 품질 관리 작업자가 바로 옆에 있는 하얀 줄을 잡아당긴다. 그게 신호가 돼 바로 공정은 멈춰 선다. 더 이상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도요타의 원시적이지만 독기 어린 의지가 담겨 있다.

“세계 생산 1위? 아니, 우린 양보다 질이다.”
요즘 만나는 도요타 사람들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은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의 최근 1년간의 변화상이기도 하다. 2008년 사상 최초로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전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의 자리에 올라섰던 도요타. 하지만 그 영광은 1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2009년 말 가속 페달 결함 의혹으로 번지기 시작한 도요타에 대한 불신은 2010년 초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이어졌다.

지난해 2월 미국 의회의 공청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했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사진) 사장. 그는 당시 도요타 직원들 앞에서 펑펑 울었다. 대다수 언론들은 ‘억울함, 그리고 창업자 가문 출신으로서 회사에 누를 끼쳤다는 자책의 눈물’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그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의 눈물이었다. 최근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사장직을 내던질 각오를 한 채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내 ‘도요타 가족들’의 열렬한 격려에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공청회 굴욕’ 이후 근 1년 만에 그는 다시 미국 땅에 섰다. 그러고는 기자회견에서 향후 도요타의 지향점으로 ‘오니기리(お握り: 주먹밥)론’을 제시했다.
“여러분. 안젠(안전)과 안신(안심)은 일본어로는 발음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는 대형 편의점에서 대량 생산돼 파는 주먹밥과 어머니가 일일이 만들어주시는 주먹밥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편의점 주먹밥이 안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도요타 자동차는 안전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다 우리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주먹밥처럼 한 대 한 대의 차량에 일일이 마음까지 담아 만들겠습니다.”

‘안전’에다 어머니의 주먹밥이 상징하는 ‘안심’이란 개념을 ‘+α’로 얹은 것이다. 기존의 ‘고객만족’에다 ‘어머니의 주먹밥’을 가미한 방향이 바로 ‘뉴 도요타 웨이’다.
도요타의 품질에 대한 열망과 자신감은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장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직접 관장하는 글로벌 품질특별위원회가 설립됐다. 그리고 세계 6개 지역에 COQ(Chief Quality Officerㆍ최고품질책임자)를 새롭게 만들었다. 이른바 ‘기본으로 돌아가자’ 운동의 일환이다.

30여 년간 품질 관리만 담당한 요코야마 히로유키 품질담당 상무는 “도요타가 2002~2006년에 급속도로 성장할 때 고객에게 더 빨리 차를 공급하기 위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생산을 늘린 것이 오늘날의 위기의 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더 빨리 문제를 파악해 더 빨리 대응하는 EDER(Early Detection and Early Resolution) 시스템을 새로 구축해 무엇보다 고객이 안심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인지 도요타의 브랜드 이미지는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다. 미국의 보험업계단체인 교통도로안전보험협회가 한 달 전 ‘안전성이 뛰어난 2011년 모델 승용차’ 66종을 발표했는데, 이 중 도요타는 8차종이 뽑혔다. 지난해는 ‘0’이었다.

그러나 품질 관리가 강화됐다고 해서 도요타의 고민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판매 상황이 여의치 않다. 무엇보다 유례 없는 엔고가 일본 내 생산을 한계 상황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게다가 높은 생산 효율성에 가격 경쟁력까지 겸비한 현대자동차 등 후발 주자들이 무섭게 쫓아오고, 한때 ‘맛이 갔던’ GM과 포드 등이 힘을 되찾고 있는 형편이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프리우스’가 아무리 잘 팔린다고 해도 아직까지 하이브리드 차량은 수익성이 절대적으로 떨어진다. 수익성이 우월한 가솔린 자동차를 많이 팔지 않으면 남는 장사가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비용의 일본 내 생산을 포기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 도요타 내부에선 극비리에 한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자동차 1대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일본 국내 생산보다 30%가량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건비·세제·환율·부품조달 비용 등 여러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요타는 굳이 먼 길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당장 생산 효율성이나 판매는 떨어질지 모르나 ‘도요타의 DNA’를 지켜가겠다는 것이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에서 물건(자동차)을 계속 만드는 건 기업으로서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게 맞다. 하지만 70년에 걸쳐 도요타는 일본에서 자라왔다. 장인의 기술, 그리고 혼을 담은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도요타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그 이전에 우린 일본의 대표선수다. 그걸 잊어선 안 된다.”

도요타는 그런 맥락에서 올 3월께 10년 후인 2020년의 도요타의 모습을 담은 ‘2020년 비전’을 정식 발표할 예정이다. 친환경 차량의 확대, 중국·인도 등 신흥시장 집중 공략,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와 자동차의 융합이 그 핵심이 될 전망이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단기 부활’이 아닌 ‘중장기 부활’의 길을 선택한 도요타의 새로운 도전과 집념이 깔려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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