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되는 골프, 약이 되는 골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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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2세의 나이로 타계한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씨는 골프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바쁜 와중에도 틈만 나면 클럽을 챙겨 들고 골프장으로 향하곤 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골프광인 이씨가 술을 끔찍이 아끼는 ‘애주가’인 동시에 담배를 입에 물고 사는 ‘애연가’였다는 것이었다. 쾌활한 성격의 이씨는 선후배 혹은 지인들과 자주 술자리를 갖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더구나 그의 손엔 골프를 할 때나 술을 마실 때나 항상 담배가 들려 있었다. (망자를 욕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18홀을 도는 동안 거의 담배 한 갑이 사라지곤 했다니 하루 종일 그가 피운 담배의 양이 얼마나 될지는 짐작이 간다.

나는 의사는 아니지만 그가 남들보다 일찍 세상을 뜬 것은 독이 되는 골프를 했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한다. 세간에 알려진 그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폐암이지만 그가 이 병에 걸리게 된 데는 ‘독이 되는 골프’를 한 것이 한몫했다는 게 내가 내린 진단이다.

자, 그럼 이쯤 해서 직장인 A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자. 토요일 오전 5시30분. A는 ‘새벽탕’ 골프를 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선다. 전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그가 귀가한 시간은 오전 2시. 3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 일어났지만 입에서는 여전히 술 냄새가 가시지 않은 상태다. 정신없이 차를 몰고 골프장으로 향한 뒤 오전 7시 티오프. 낮 12시까지는 직장 동료들과 필드에서 전투(?)를 치른다. 동료들과의 친선 골프라지만 적잖은 내기 돈이 걸렸기에 바짝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그의 손은 연방 담배를 찾는다.

“술 깨는 데는 역시 골프가 최고야. 이렇게 맑은 공기도 마음껏 마실 수 있잖아.”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A의 손엔 담배가 들려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시기보다는 니코틴 찌꺼기를 폐 속 깊은 곳까지 빨아들이는 쪽에 가깝다. 내기 골프를 하면서 돈까지 잃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스트레스가 쌓이는 쪽에 가깝다.

이쯤 되면 A에게 골프는 약일까, 독일까. 누가 봐도 A가 즐기는 골프는 건강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害)가 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에게 골프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약이 아니라 알코올과 니코틴을 몸 곳곳에 빠르게 전달하기 위한 최적의 도구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약이 되는 골프란 어떤 것일까. 골프가 약이 되기 위해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게 우선이다. 밤늦게까지 유흥을 즐긴 뒤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골프장으로 달려가는 건 결코 몸에 좋을 리 없다. 알코올 역시 마찬가지다. 알코올과 골프는 상극이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이른 새벽 티오프하는 일과를 반복하는 건 자해 행위에 가깝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최소한 골프장에서만큼은 담배도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본인에게도, 동반자에게도 담배는 해가 된다. 그래서 나는 담배를 아예 팔지 않는 골프장이 늘어나는 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독이 되는 골프에 끌려갈 것인가, 약이 되는 골프를 즐길 것인가.

J-GOLF 취재본부장 newspoe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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