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나목’으로 서 계시지 말고 돌아오소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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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호 01면

한국 문학의 母性, 박완서(1931~2011)

선생님
아침에 일어나 흰 꽃잎처럼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눈송이 사이로 한 송이 눈송이가 되어
선생님 떠나가셨다는 소식 너무 놀랍습니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 혹한이 선생님껜 그토록 혹독하셨습니까
일찍이 이 시대의 ‘나목’이 되어
문학의 언어로 위안과 행복의 열매를 나누어 주셨는데
이제 또 어디 가서 한 그루 ‘나목’으로 서 계시려고 하십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차산 아래 뜰도 거니시고
봄이 오면 피어날 꽃 이야기도 하시고 고구마도 드시고
마더 테레사 수녀님께서 좋아하신 초콜릿도 드셨는데
선생님
왜 그렇게 서둘러 떠나심으로써 저희를 버리십니까
저랑 봄날 햇살 아래 점심 드시기로 한 약속 잊으셨습니까
가슴에 묻으신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아드님 뵙고 싶어
서둘러 가셨으리라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뵙고 싶어 서둘러 가셨으리라
선생님 문학의 뿌리인 어머니 만나 뵙고 싶어 더욱 서두르셨으리라
미루어 생각해도 생각해도 눈물이 고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불혹의 작가이십니다
아직도 쓰셔야 할 소설이 흰 눈 속에 피어날 동백처럼 숨죽이고 있습니다
못 가본 길이 그토록 아름다우십니까
좀 늦게 가보시면 아니 되옵니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것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견디는 것”이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
제게 힘과 위안을 주신 그 말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데
아, 어떠한 고통도 극복하려 들지 말고 견뎌야겠구나
가슴 깊이 새기고 열심히 노력하고 실천해왔는데
선생님께서는 또 무엇을 견디시기 위해 그토록 서둘러 떠나셨습니까
소복소복 눈 내리는 아침 눈길을 그토록 걸어가고 싶으셨습니까
‘휘청거리는 오후’ 표지를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시면서
새색시처럼 살짝 웃으시던 그 수줍은 미소 잊혀지지 않는데
선생님
이 눈 그치면 시장 보고 오신 듯 돌아오세요
돌아오셔서 저희들에게 ‘이제 한 말씀만 하소서’
선생님께서도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이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이제 그리움을 축복처럼 생각하겠습니다
전쟁과 분단과 이산의 아픔이 없는 천주의 나라에서 다시 쓰신 소설
열심히 읽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문학의 영원한 모성이신 선생님
한국소설문학의 맑고 밝은 햇빛이신 선생님
천주님 품 안에서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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