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감싸 안는 사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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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호 18면

꿈속에서 자신이 거지가 된다든가, 거지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아무리 꿈속이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상황, 앞날도 보이지 않고, 최소한의 신체를 보호할 장치도 없는 형편은 누구에게나 공포다. 이런 고독하고 힘든 상황을 꿈속에서 경험한 뒤 심리 분석을 받다 보면 자신에게 숨어 있는 의존심, 물질에 대한 집착, 다른 사람을 조정하려는 마음 등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거지가 되는 악몽이야 꿈을 깬 뒤 교훈을 얻으면 그만이지만, 현실에서 노숙자가 된다면 문제는 다르다. 동화 ‘왕자와 거지’에서처럼 거지가 하루아침에 왕자가 되는 일은 현실에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노숙시설 출신의 축구 선수 베베가 맨유에 들어갔다든가, 마약중독의 노숙자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일이 해외 토픽에 나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칼바람과 시멘트 바닥에서 나온 냉기에 삭신이 쑤시고 이를 닦지 못해 생긴 충치와 치주염, 더러운 음식을 먹은 뒤에 나타나는 위장관의 통증은 사람의 혼까지 빼 놓는다. 영양과 위생상태가 좋지 않으니 결핵이나 장염 등 전염병에 노출돼 몸이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진다. 밤에는 추워 잠을 못 자고 낮에 졸면서 지내면 기초대사율이 떨어져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자신이 겪은 실수와 불운에 대한 자책이다. 실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자기인생을 끝내려는 무의식이 작동하면서 다시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개인의 머릿속에 ‘의지’가 있다고 해서 노숙자 생활을 청산하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다.

시립병원이나 정신병원에서 노숙인들을 면담해 보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사연을 접하게 된다. 빚에 쪼들려 친척들 돈까지 탕진해 지인들 앞에 나타날 수 없는 사람, 알코올이나 약물중독으로 본인과 가족을 괴롭히다 폐인이 된 사람,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 등의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 어린 시절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해 거리를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 모두에게 버림받고 삶의 끈을 놓아 버린 사람 등등….

노숙의 원인이 다르니 처방도 단순하지 않다. 노숙자 중에는 의지가 박약하고 허황된 이도 있지만, 열심히 일했는데도 판단을 잘못해 거리로 내몰리거나 인간으로서의 기초적인 교육과 훈육조차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사회가 안정된 후에는 밑바닥으로 한 번 떨어지면 다시 올라가는 기회를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격변기에 자수성가한 입지적 인물의 관점이나,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의 관점으로 노숙인들을 뭉뚱그려 재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이유다.

최근 노숙인을 위한 ‘사랑의 울타리’ ‘내일을 여는 집’ ‘소중한사람들’ 같은 재활기관이나, 노숙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판매하는 ‘빅이슈’ 등의 잡지가 등장하고 있다. 다양한 삶의 질곡을 겪은 이들을 경멸하고 무시하기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고 돌봐 주는 따뜻한 사회가 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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