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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작전 성공 뒤엔 목숨 건 ‘캡틴’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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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삼호주얼리호가 납치되기 전 부산항에 정박 중인 모습. 지난 15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던 이 화학물질 운반선에는 선원 21명이 타고 있었다. [연합뉴스]


선장의 임무는 막중하다. 배를 지키고 그를 따르는 선원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더구나 망망대해에서 해적들에 납치된 배에서는 살신성인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삼호주얼리호 캡틴(선장) 석해균(57)씨. 그는 목숨을 걸고 배와 선원을 지킨 이번 구출 작전의 ‘영웅’이다.

 해적들이 들이댄 차가운 총구가 귀밑을 찔렀을 땐 그도 겁이 났다. 하지만 침착해야 했다. 그의 머릿속엔 선원들과 함께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을 게다. 해적들은 빨리 배를 소말리아 연안으로 이동시키라고 다그쳤다. 그럴수록 그는 침착하게 키를 움직였다. 속도도 최대한 늦췄다. 같은 회사 소속으로 해적들에 납치됐다 7개월 만에 풀려난 ‘삼호드림호’ 사건을 잘 알고 있어서다. 해적들의 소굴인 소말리아 연안으로 들어가면 장기간 억류될 수밖에 없다. 지난 18일 청해부대의 1차 진입 시도를 보면서 이번엔 정부가 반드시 우리를 구출할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어떻게 하든 배가 최대한 오랫동안 공해상에 머물러 있도록 해야 했다.

해적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배를 지그재그로 몰았다. 들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청해부대가 다시 작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했다. 위기 속에서 선장은 이렇게 목숨을 내던진 리더십으로 선원과 배를 살렸다. 이성호 합참 군수지원본부장은 21일 작전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해적들이 납치한 선원들을 빨리 소말리아 연안으로 끌고 가려 했지만 석 선장이 기지를 발휘해서 작전을 펴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청해부대의 1차 진입 작전 당시 삼호주얼리호는 소말리아 연안에서 700여 해리 떨어진 해상에 있었다. 석 선장은 이때 “조타실에 이상이 있다”고 해적을 속이고 배를 멈췄다. 그러나 청해부대가 물러나자 석씨는 삼호주얼리호를 남쪽의 소말리아가 아닌 북쪽의 오만으로 몰았다. 이 때문에 19일 삼호주얼리호는 오히려 소말리아 연안에서 900여 해리 정도 떨어진 해상으로 이동했다. 석 선장이 삼호주얼리호의 방향을 바꾼 덕분에 다른 해적들이 탄 모선이 삼호주얼리호에 합류하는 걸 지연시켰다. 청해부대가 2차 진입을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준 셈이다. 중화기가 실려 있는 해적 모선이 합류하면 청해부대의 진입 작전은 훨씬 어려워졌을 것이라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작전 당시 조타실에 있던 석 선장은 해적들이 쏜 총에 복부 관통상을 입었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 선장은 헬기 편으로 오만의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석 선장은 또 국제상선공통망을 통해 피랍 선박 상황을 수차례 전달해 군이 작전을 계획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후문이다.

군 관계자는 “석 선장은 해적의 명령에 따라 영어로 삼호해운과 통화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우리말로 당시 상황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해적들이 영어를 쓰라고 총을 들이대도 석 선장은 굴하지 않고 한국말로 해적들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 작전을 펴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가족들은 석씨의 구출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부상을 걱정했다. 아들 현욱(36)씨는 “그동안 가족들은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원했다”며 “구출 소식을 듣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출 작전을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아버지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삼호해운 등에 따르면 석 선장은 책임감이 강하고 가족들에게도 자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호해운 관계자는 “회사 내에서도 훌륭한 선장으로 꼽혔다”며 “이번에도 목숨을 내놓고 선원들을 살렸다고 하니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부산 장전1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석씨의 이웃주민 김모(56)씨는 “석 선장은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 주민들도 섬심껏 배려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며 “그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선원을 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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