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오전 11시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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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남산 국립극장 오전 11시 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국악인 황병기. 국악기로 이뤄진 관현악과 허각·김수희 등 대중가수의 만남도 시도한다.


“‘슈퍼스타K 2’에 도전했으면 어땠을까요. 한 살부터 아흔아홉까지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저도 열심히 연습해서 한 번 나가볼 걸 그랬습니다.”

 국악인 황병기(75)씨 특유의 농담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2011 정오의 음악회’ 첫날이었다. 이날의 초대손님은 ‘슈퍼스타K 2’의 우승자 허각.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국악기 반주에 맞춰 ‘하늘을 달리다’ ‘언제나’ 등을 불렀다.

 황병기씨가 진행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는 이처럼 뜻밖의 인물을 불러낸다. 국악의 대중화에 불을 댕기려는 시도다. 진행자 특유의 여유 있는 입담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다음 달에는 뮤지컬 배우 전동석과 이해리, 3월에는 가수 김수희씨가 나온다.

 공연장들의 ‘11시 전쟁’이 뜨겁다. ‘음악회=저녁’의 통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오전 11시 음악회는 2004년 시작됐다. 서울 예술의전당이 시작한 ‘11시 콘서트’는 이제 각 공연장의 주력 상품이 됐다. 공연장마다 각기 특색을 살려 일종의 ‘완숙기’를 맞고 있다. 오전에 여유 시간이 있는 주부들을 주로 겨냥하고 있다. 공연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이다. 콘서트로는 비교적 저렴한 1~2만원 가격을 내건 점도 공통점이다.

 ◆원조 11시=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은 올 한해 주제를 ‘국가별 작곡가’로 잡았다. 이달 13일 이탈리아 편으로 시작했다. 2월에는 러시아 작곡가들을 만난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을 들어보고, 러시아 특유의 정서를 확인한다.

 일곱 번째 시즌을 맞은 예술의전당 11시는 이처럼 다른 공연장에 비해 심도 있는 내용을 자랑한다. 3월 미국, 4월 독일을 돌아 여러 나라로 간다. 진행자는 첼리스트 송영훈. 매달 두 번째 목요일 오전 11시. 전석 2만원.

 ◆도시여행 11시=경기도 고양시 아람누리는 무대를 특화했다. 유럽의 ‘도시’를 주제로 정했다. 다음 달 핀란드의 헬싱키를 시작으로 4월 체코 프라하, 6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음악을 듣는다. 2009년 성남아트센터에서 오전 음악회를 진행했던 음악 칼럼니스트 장일범씨가 새로운 얼굴로 나섰다. 짝수 달 마지막 주 목요일 오전 11시. 전석 1만 5000원.

 ◆수필형 11시=경기도 성남아트센터의 11시는 매번 한 편의 에세이를 읽어주는 듯하다. 2월 오스트리아 빈의 전통적인 신년 맞이인 왈츠·폴카 등을 들으며 시작한다. 이후 ‘리스트 탄생 200주년’ ‘4월 체리향기’ ‘영화 속 클래식’ ‘여름날 도시에서’ 등 주제로 다양한 음악을 엮는다. 크로스오버 가수 카이가 마이크를 잡는다. 콘서트 무대 첫 진행을 맡았다. 매달 둘째 주 목요일 오전 11시. 전석 2만4000원.

 ◆체험형 11시=아침 공연 바람은 국악계로도 번졌다.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은 말과 음악이 함께하는 11시 콘서트를 연다. 가수 유열이 진행하며 각계 인사들이 출연해 자신의 삶과 생각을 들려줄 예정이다. 경기·서도민요, 판소리 등을 배워보는 시간도 마련, ‘체험형’ 공연이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3~6월, 9~11월 넷째 주 수요일 오전 11시. 전석 1만원.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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