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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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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 분야의 최고수로 불리려면 정녕 얼마의 내공을 지녀야 할까. 일식 주방장이라면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나오듯 초밥 한 개에 들어가는 밥알이 300 몇 개라는 것쯤은 알아야 하겠다. 기타리스트라면 ‘20세기 최고’로 불리는 지미 헨드릭스처럼 기타를 뒤로 돌려 치더라도 명불허전의 연주가 나와야 할 거다. 기타를 불태우거나 기타줄을 물어뜯는 기행(奇行)도 최고수가 하면 ‘전설’이 된다. 조선 후기 현악기 연주자 김성기는 거문고 뜯는 소리에 학이 내려와 앉았다고 하니 연주 실력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런 최고수를 거꾸로 패러디해 웃음을 주는 게 KBS ‘개그콘서트’의 장수 코너 ‘달인’이다. 달인 김병만 선생은 16년간 줄타기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호가 ‘낙상(落傷)’인 엉터리일 뿐이다.

 최고수에 대한 찬사는 분야를 막론한다. 예컨대 음주. 프로바둑 최고인 9단을 ‘입신(入神)’이라 하듯 술 잘 마시는 사람은 주당(酒黨)에서 출발해 주선(酒仙)·주성(酒聖)·주신(酒神) 등으로 불린다. 신선·성인·신이 되려면 양(量)만으론 안 되고 질(質), 즉 술의 풍취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 데서 오르기 힘든 경지임이 짐작된다. 일찍이 조지훈 시인은 주도(酒道)에도 단수(段數)가 있다고 했다. 18계단으로 이뤄진 음주 급수 중 맨 밑은 술을 안 마시는 불주(不酒), 최고는 ‘폐주(廢酒)’라고도 하는 ‘열반주’다.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영영 떠났다는 뜻이니 범인(凡人)에겐 이야말로 다른 세상 얘기다.

 이처럼 뛰어난 정도가 상상 이상인 경우를 일컫는 ‘인터넷 이디엄(idiom·숙어)’이 ‘종결자(終結者)’다. 종결자는 어떤 사람이 지닌 능력이나 조건이 최고 혹은 최상이어서 논쟁을 끝내버린다는 뜻이다. 신체조건이 뛰어나면 ‘몸매종결자’, 얼굴이 나이보다 어려 보이면 ‘동안종결자’다. ‘극강’‘지존’‘본좌’에 이어 최고수에 열광하는 네티즌의 심리가 반영된 말이다. ‘엄친아(엄마친구 아들·무엇이든 뛰어난 사람)’가 그랬듯 뛰어나서 부럽긴 하지만 나는 결코 될 수 없는 존재라는, 체념과 냉소도 섞여 있다.

 며칠 전 배우자가 산 땅마다 값이 올라 투기의혹을 받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그에겐 ‘투기종결자’라는 별명이 붙은 채 인사청문회가 종결됐다. 투기의 최고수라니, 일종의 반어법인 셈이다. ‘투기종결자’를 보는 국민 정서를 당사자와 임면권자는 헤아릴지 모르겠다.

  기선민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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