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실업률 4%시대 대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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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내년 공공근로사업 예산을 올해 2조9백억원에서 9천억원으로 크게 줄였다. 57.0% 삭감이다. 경기회복을 내다보고 한시적 생활보호 지원금도 6천3백억원에서 4천5백억원으로 줄인다. 실업자 대부금도 거의 절반으로 축소됐다. 정부는 이렇게 한시적인 실업대책 예산을 깎아 재정 규모 증가율을 상당히 낮추고 있다. 순수 실업 예산은 올해보다 무려 51.8% 줄어든다.

반면 ‘적게 내고 많이 타는’ 기형적인 수지구조로 결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공무원연금에 융자방식으로 1조원을 지원키로 했다. 농어민 연대보증 해소책으로 3천억원을 지원한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사업에 1백억원을 배정했고, 5백억원 모금으로도 충당키 어려운 건립사업비와의 차액 1백억원은 추가 편성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광주·대구 등의 정치 ‘성지’(聖地)
특화산업 지원엔 사업의 윤곽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1천2백억원을 편성해 놓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선심성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총선이 걸쳐 있는 해의, 이같이 정치색 짙은 예산편성은 선심성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민단체와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경기회복을 근거로 실업 예산을 절반 이상 줄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경실련이 지난 10월 주최한 정부 실업예산 편성에 관한 토론회에서 발제자인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아직 사회 각 영역에서 구조조정이 진행중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당장 약간의 경기회복 기미가 보인다고 실업예산을 33.2%나 대폭 축소하는 것은 너무 단기적인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수봉 민주노총 고용안정센터 소장은 “내년 실업률을 5%대로 전망하고 일자리 창출 예산을 55.5%나 줄인 것은 지금의 성장이 ‘고용 없는 성장’‘장기 실업자를 양산하는 성장’이란 사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업예산의 집행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감사원장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가 같은 달 감사원에 제출한 ‘정부실업대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감사방안’에 따르면 지난해 과정을 마친 직업훈련생 5만6천여명의 취업률은 36.9%에 그치고 있다. 훈련생 6천여명은 이중으로 실업대책 혜택을 받았고, 2단계 공공근로사업 참가자 중 비실직자가 무려 3만5천여명에 이른다.

올들어 경기가 호전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IMF 체제의 상징과도 같은 노숙자도 다시 늘고 있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노숙자다시서기지원센터는 노숙자가 9월 들어 급증, 10월17일 현재 최대 6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10월(3천여명)
의 두 배 가까운 숫자다. 한편 인플레를 유발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저 수준의 실업률인 자연실업률 4%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재정경제부는 IMF 체제 이전 수준인 2%의 실업률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실업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무리하게 실업대책을 집행하는 것은 인플레만 부추길 뿐이라고 지적한다.

최강식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실업자가 많은 것은 실직자가 빨리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향후 실업대책은 장기실업자 감축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업대책에 대한 시각과 접근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필재 기자] 이코노미스트 제 510호 199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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