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믿지’ 앱 대박쳤지만 규제 여전 … 아직은 정부 못 믿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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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원피스’의 김정태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앱 ‘오빠 믿지’가 뜬 스마트폰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오빠 믿지’를 당국에 신고 없이 이틀간 서비스했다는 이유로 최근 불구속 입건됐다. [김상선 기자]


국내 최고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 개발업체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창업한 대학생 벤처 ‘원피스’의 김정태(26) 대표. 그는 1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졸지에 범법자가 될 지경에 놓여 있다. 지난해 10월 연인 위치 확인 앱 ‘오빠 믿지’를 당국에 신고 없이 이틀 동안 서비스를 했다는 이유로 이달 6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당사자 동의 없이 위치정보를 제공했다는 죄목도 적용됐다. 현행 위치정보법 19조 3항은 사업자가 위치정보를 제공받는 사람, 제공 일시, 제공 목적을 정보 주체에게 즉시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이 앱을 내려받으면 위치정보 활용에 동의하느냐는 영문 약관이 뜨고 여기에 동의하면 서비스가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으로 생각했지, 국내법에 따른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는 걸 몰랐어요.”

 ‘오빠 믿지’는 연인들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앱으로 출시 당일부터 화제가 됐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불법이라는 통보를 받고 즉시 서비스를 중단했다가, 지난해 12월 신고와 약관 제정 등을 거쳐 서비스를 재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방통위는 ‘즉시 통보’ 규정을 개정할 예정이다.

 김 대표가 원피스를 창업한 것은 지난해 2월.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가 2009년 9월 각 대학 게시판에 ‘개발자를 찾습니다’는 글을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글을 보고 찾아온 대학생 5명과 지난해 2월 ‘원피스’를 창업했다. 보증금 없는 월세 40만원짜리 사무실에서 앱 개발을 시작했다. 월세와 운영비는 본인의 아르바이트 수입과 친구들이 가족·친지로부터 빌린 돈으로 충당했다.

 “원래 컨설턴트가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앱 개발 등 정보기술(IT) 쪽에서 일하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 진로를 바꿨습니다.”

 지금까지 원피스가 출시한 앱은 40여 개. 이 중 절반 이상이 각종 앱 시장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성공을 거뒀다. 가상의 여자 친구를 만들어 주는 ‘여자 친구’ 앱은 다운로드 70만 건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매직아이’ ‘지능돋네’ 같은 앱도 인기를 끌었다. 해외 시장을 노리고 영어로 제작한 ‘타투에이알(TattoAR)’은 이탈리아와 대만 앱스토어에서 무료 앱 2위를 기록했다. ‘엠마앱프레임(Emma app frame)’은 대만 2위, 일본 20위를 했다. 무료 앱이었지만 구글의 광고 플랫폼 ‘애드몹’을 탑재해 앱마다 1000만~2000만원의 광고 수입을 올렸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앱 기획·제작 대행 수주도 생겼다. 직원 수가 21명으로 늘었고, 월세 500만원짜리 사무실로 옮겼다. 지난해 매출은 5억원. 그는 성공 비결을 ‘똘끼(똘아이끼)’와 ‘대담함’으로 꼽으면서 “나는 겁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일상과 밀접하면서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지속적인 서비스가 가능한 플랫폼 앱을 만드는 게 목표다. 반짝 인기 끄는 앱으로는 회사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작은 벤처로선 출시한 앱이 3개만 연달아 실패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 그는 “이미 앱 시장은 콘텐트 확보 능력과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이나 게임업체, 공공기관들이 점령했다”며 “벤처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엔터테인먼트 앱뿐인데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고 염려했다. 까다로운 법 규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힘들게 짜낸 아이디어로 앱을 만들면 이름만 바꾼 유사 앱들이 속속 나오는 것도 답답하다. “의무는 많아지는데 권리는 보장받기 어렵다”는 게 김 대표의 하소연이다. 그는 “정부가 앱 개발자를 지원하고 벤처 창업을 독려한다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고 덧붙였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오빠 믿지’ 앱=연인들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앱이다. 자신의 위치를 업데이트하면 상대방이 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말 출시된 후 개인 사생활 침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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