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윤애란 아산우리가족상담센터 대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일러스트=박향미

‘따르릉’

 “소장님, 안녕하세요? 우리 둘째가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어요. 하하하.” “얼마나 좋으세요. 정말 자랑스럽겠어요. 축하 드립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내가 아는 최 교수의 부인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몇 년 전 최 교수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최 교수에게 내가 만든 모임에 이사로 참여해 달라 부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 교수는 “나는 바깥 일만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소. 가정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일을 돕고 싶소. 윤 소장의 남편과 통화를 해서 한 가지만 물어보고 결정하겠소”라고 말했다.

 며칠 뒤, 아침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최 교수였다. 그는 남편과 통화를 했다. “아내가 가정 안에서 성실한가요? 아내의 사회봉사에 대해서 신뢰하고 지지하는가요?” 이런 의식을 거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약간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가정 안과 밖에서 잘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일 이후 최 교수를 달리 보게 되었다. 그런 차에 그 댁 둘째 아들이 하버드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하버드대학원을 졸업한 둘째 아들은 현재 외국에 나가 영사로 근무하고 있다. 최근 정년퇴직을 앞두고 둘째 아들이 영사로 근무하고 있는 나라에 여행을 다녀온 최 교수에게 “인생 선배이니 자식을 잘 키우는 노하우를 말해 달라”고 떼를 썼다.

 “세계 일류대학에 보냈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 다니고 있으며, 마음에 드는 배필까지 만났으니 자식농사 성공한 것 아니냐”고 했더니, 크게 웃고 나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이었다.

가난했던 미국 유학시절

가난한 유학생이니 공부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했다. 아이들은 줄줄이 태어났다. 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한 달에 한 번 아이들과 짧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첫째부터 막내까지 1대 1로 따로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대화가 끝나면 아내와도 그런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 어릴 때 시작해 다 클 때까지 오랫동안 매달 빠지지 않고 계속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들에게 물었다. “네가 오늘날 이렇게 발전하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이냐?” 아들은 말했다. “매달 한 번씩 아버지와 갖는 만남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아들을 만나는 날이면 갖고 있는 옷 중에 가장 반듯한 옷을 입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한 달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고, “앞으로 한 달은 어떤 일을 하고 싶니?” 라고 물었다.

 다시 한 달 뒤 아버지는 수첩에 적힌 한 달 전 만남의 기록을 보면서, “한 달 동안 그 목표는 어떻게 됐니?”라고 다시 물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변명이나 합리화를 할 때에도 묵묵히 얘기를 들어주었다.

 최 교수조차 단순한 가족의 전통이 그렇게 자녀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자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20분 만남으로 행복찾아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아이들과 수많은 약속을 하면서 작심삼일로 끝나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

 많은 부모들이 그다지 성공한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국가에서도 건강한 가정, 가족친화적인 문화조성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정의 전통들은 산업화와 도시화, 핵가족화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고, 아직 좋은 가족문화의 전통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가정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새해다. 여러 가지 좋은 계획들을 세울 시기이다.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가정과 우리 자녀들을 위해 최 교수가 해온 것같이 매달 자녀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계획을 가져보면 어떨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이 작은 행동이 우리 자녀들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가장 큰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윤애란 아산우리가족상담센터 대표
일러스트=박향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