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내 나라 역사 안 가르치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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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신문과 방송이 제대로 가야 할 길을 잃은 지가 몇 년째입니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메이저에 속하는 어떤 신문이 고등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특집기사를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신문에 희망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야 학문의 분야가 너무나 넓어져 광대무변(廣大無邊)의 지경에 이르렀으나, 옛날 전통시대의 교육이야 크게는 두 분야만 제대로 배우면 훌륭한 지식인이자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경서(經書)요, 둘은 사서(史書)였습니다. 그래서 경사(經史)에 밝지 않고서는 지식인도 될 수 없고, 지도자의 반열에도 오르기 어려웠습니다. 아들들이 독서군자(讀書君子), 책을 제대로 읽은 지식인이자 지도자(君子)의 반열에 오르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바랐던 다산(茶山·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서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참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經學) 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다진 뒤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 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보아야 한다”(必先以經學立著基址 然後涉獵前史 知其得失理亂之源 : 寄二子)고 말했습니다. 경(經)과 사(史)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서는 지식인으로 설 자리가 없음을 명쾌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또 말은 이어집니다. “여러 가지 우리나라 옛 문헌이나 문집에는 눈도 주지 않으려 하니 이거야말로 병통이 아니겠느냐? 사대부 자제들이 우리나라의 옛일을 알지 못하고 선배들이 의논했던 것을 읽지 않는다면 비록 그 학문이 고금을 꿰뚫고 있다 해도 그저 엉터리가 될 뿐이다”고 부연해 자기 나라의 역사를 배우지 않는다면 사람다운 구실을 할 수 없다고까지 극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고려사』 『반계수록』 『서애집』『징비록』 『성호사설』 등의 책을 읽으라 권해 주고, 『삼국사기』 『국조보감』 『여지승람』 『연려실기술』 등의 역사책들을 철두철미하게 읽으라고 주문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가장 먼저 세계화 마인드를 지녔던 학자가 다산이었습니다. 『천주실의』를 비롯한 종교뿐 아니라 서양의 과학사상을 깊이 연구했던 분도 다산이었습니다. 당대 중국의 많은 학자들의 책을 구해 읽으면서 그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기도 했고, 그 시절 유입되던 일본 유학자들의 저서를 살피면서 그들의 학문 경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사람도 다산이었습니다. 정치·경제·문화 등 온갖 분야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세계적 안목으로 학문이 발달해야 한다는 그런 견해와 생각을 지녔으면서도 다산은 자기 나라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면 온전한 지식인이 될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세계화에 뒤처진다는 이유로 국사교육에 소홀한 교육 당국은 이 점을 분명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부활시켜 독서군자다운 학생들을 배출시켜 줄 것을 다산의 이름으로 당국에 요구합니다. 세계화로만 치닫다가 제 나라 역사도 모르고 민족의 정체성도 지니지 못한 국제미아만 양산하는 그런 교육에서 지양하기만 바랍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