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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머리보다 선진국 꼬리가 나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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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메이저 리거 추신수 선수가 방송에 출연해 메이저 리그 선수냐 마이너 리그 선수냐에 따라 식사 대접이 너무나 달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이너 리그 초보 땐 덜렁 샌드위치 하나가 식사의 전부다. 잼도 딸기잼 하나뿐이다. 좀 더 올라가면 잼도 다양해지고 수프도 나온단다. 그래도 샌드위치는 샌드위치다. 제대로 식사하는 건 메이저 리거가 된 다음부터다. 그야말로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다 먹을 수 있다. 그러니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다. 메이저 리그로 올라가기 위해.

 동일한 논리가 적용되는 곳이 바로 국제금융시장이다. 여기에도 마이너 리거가 있다. 바로 신흥국이다. 시장의 마이너 리거인 신흥국은 훨씬 더 처절한 아픔을 경험해야 한다. 선진국이면 좋은 자본이 장기적으로 들어온다. 신흥국이면 들어오는 자본의 질이 떨어진다. 들락날락하기 일쑤다. 좋을 땐 배가 터지도록 먹지만 나쁠 땐 쫄쫄 굶기도 한다. 경제에 배탈을 일으키고 심하면 응급실에 실려 가게 한다. 신흥국에선 제일 잘 나간다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신흥국은 신흥국이기 때문이다.

 벌써 지난해다. 우리는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G8 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 치른 첫 번째 회의였고 그것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맞는 말이다. 최소한 ‘지구인’ 생각에는 말이다. ‘화성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거꾸로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타율 좋고 수비 잘하고 G20 정상회의까지 성공적으로 치른 한국이 왜 신흥국인가”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런 마이너 리거 대접을 받고도 한국은 왜 가만히 있는가”다. 그렇다. 이제는 지구인 생각을 넘어설 때다. 화성인은 새롭게 본다. 새롭게 보려면 기존 생각을 버려야 한다. 먼저 버려야 할 것은 우리가 신흥국이란 생각 자체다. 스스로 마이너 리그 선수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딸기잼 샌드위치에 감지덕지한다면 추신수처럼 메이저 리거가 될 수 없다.

 도대체 신흥국이냐 선진국이냐의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누가 결정하는가.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를 넘어섰고, 조선업·반도체 등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산업이 있고, 무역규모가 1조 달러를 넘었고, 전 세계에서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국가가 왜 여전히 신흥국인가. 아니 왜 신흥국으로 불리는가.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자본시장의 폭과 깊이, 유동성, 상품 다양성, 체계적인 금융 감독과 투자자 보호, 최고의 속도와 안정성을 갖춘 거래 시스템. 도대체 왜 우리가 신흥국인가. 화성인 말이 맞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에서 보면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한국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곳은 바로 국제금융시장이다. 적극 설득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논리적으로 다툴 필요도 있다. 메이저 리거는 관중이 결정한다. 구단주 마음에 안 들어도 관중이 인정하면 될 수밖에 없다. ‘모건스탠리 국제자본시장지수(MSCI)’가 부당하게 한국을 선진지수에 편입하지 않으면 그들과 협상치 말고 당당하게 글로벌 투자자들을 직접 설득하자.

 이젠 벗어나야 한다. 신흥국 꼬리를 떼어낼 때가 됐다. “뱀의 머리가 용의 꼬리보다 낫다”는 말은 국제금융시장에선 통하지 않는다. 꼬리라도 용이 낫다. 신흥국 중 최고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자. 최고라도 신흥국은 신흥국이다. 마이너 리그는 마이너 리그다. 바로 이것이 글로벌 시장의 냉엄한 현실이다. 자기들이 급해지면 “신흥국부터 돈을 빼라”고 하지 “한국을 제외한 신흥국에서 철수해라”라고 하지 않는다. 2011년 새해엔 희망을 얘기하자. 한국경제와 금융시장, 어떻게 신흥국 굴레에서 벗어날 것인가. 지혜를 모아 답을 찾는 것이 올해 경제 및 금융정책의 핵심 과제다. 2011년은 ‘한국경제 신흥국 굴레 벗어나기 3개년 계획’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