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장사, 법 장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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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호 30면

마하트마 간디는 “노력이 없는 부의 축적이나, 도덕이 빠진 기업과 경제는 죄”라고 말했다. 양심이 빠진 쾌락, 성품이 빠진 지식, 인간이 빠진 과학, 희생이 빠진 종교 등의 죄가 판치는 국가는 망한다고도 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주최국으로 높아진 ‘국가위신’ 점수를 각종 부정부패 사건이 갉아먹고 있다. 선진국은 완전 투명성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뒷걸음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지지수가 싱가포르 수준에서 말레이시아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 기업은 세금을 20%가량 더 내야 하고, 세금 1%가 증가하면 외국인 직접투자는 5% 감소한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고위직 인사 과정이 예전의 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근자의 공직후보자 검증 과정에서는 자녀 이중 국적,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의 벽에 이어 서투른 장사의 벽이라는 새로운 패턴이 추가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감사원장 후보자가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고소득을 올린 ‘법’ 장사와 관련돼 낙마했기 때문이다. 치안 총수를 역임한 사람은 ‘밥’장사를 하던 사람과 연관된 비리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엊그제까지 전국이 장터처럼 시끌벅적하더니 이제는 고자누룩하다.

비리혐의 폭로, 수사, 사법처리, 대책 발표의 과정을 거친 후 다시 일상으로 회귀하는 한국적 부패 작동 메커니즘은 부패 면역체계를 강화시킨다. 이러다 보니 예제 없이 엉키는 부패 고리는 시간이 갈수록 복잡계로 진화하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부패라는 ‘골디온의 매듭’을 풀 알렉산더 대왕의 검은 없는 것인가.

부패 수준을 낮추려면 부패의 균형점을 낮추는 작업을 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수익률 체계의 비리구조를 타파하는 것이다. 5% 내외의 제조업 수익률을 몇 배나 상회하는 권력의 수익률 배분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나라 경제와 국민이 멍든다. 권력 장악을 위해 돈뿐만 아니라 심지어 개인 인격과 가족까지도 담보할 만큼의 높은 권력 수익률을 현저히 떨어뜨려야 한다. 돈 안 드는 선거제도를 도입했다고 해도 여전히 권력 후보자와 권력자 주변에는 돈이 몰린다. 이들에게 들어놓은 보험이 성공했을 때 권력보험 배당률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력배분체계를 손질하지 않으면 권력부패의 고리 차단은 요원할 것이다.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정비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런저런 수준의 부패를 할 때 나도 이런 수준의 부패를 저질러도 될 것이라는 생각의 균형을 깨야 한다. 담합을 통한 과점(寡占)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생각의 균형도 깨야 한다. 건설·건축·세무·위생·환경·경찰 등 주요 민생 부문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권을 가진 공직자와 사업자가 서로 짜고 이뤄지는 부패를 막아야 한다. 균형은 부패가담자 사이의 합의를 깰 때 도달된다. 따라서 기존의 반부패제도를 균형파괴의 취지와 당위성에 따라 재검토해야 한다.

노블레스(Noblesse)는 ‘닭의 벼슬’을, 오블리주(Oblige)는 ‘달걀의 노른자’를 뜻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 데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이 말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게 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투철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렴성 모르고 무시로 국민의 대리인으로 나서려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자존심과 가족을 존중하는 ‘가존심’이라도 지키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강성남 1992년 서울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대학·국회·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저서로 『부정부패의 사회학』 『행정변동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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