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251) 백악관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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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미 해군참모총장직에 올랐던 알레이 버크 제독(앞줄 오른쪽)이 57년 항공모함 새러토가에 승선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버크 제독은 53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백선엽 한국 육군참모총장에게 한국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추진하도록 막후에서 충고했다. [미 국가기록원]


오전 10시에 나는 하우스만 소령, 남성인 대위와 함께 로튼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 방에 들어갔다. 나는 일상적인 아침 인사를 마치자마자 콜린스 총장에게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면담하고 싶다. 만남을 주선해 달라”는 얘기였다.

“아시아 나라와 상호방위조약 매우 매우 드문 케이스” #날 친구처럼 대하던 아이젠하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콜린스 총장은 그런 내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미국에 1년 동안 찾아오는 각국 참모총장이 20~30명이나 된다. 참모총장이 당신만 오는 게 아니다”며 우선 거절부터 하는 모양새였다. 콜린스는 이어 “당신이 예정에도 없이 대통령을 만난다면 앞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각 나라 참모총장들이 모두 같은 요구를 할 때 거절하기 힘들다”고도 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육군참모총장이 어떻게 미국 대통령을 함부로 만날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도 들렸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콜린스 총장, 하루에도 200명 넘게 미국 군인이 전사하는 곳이 한국 전선이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나는 귀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한국군 증강계획을 브리핑한 일도 있다. 수많은 미군이 피를 흘리며 싸웠던 전선에서 나는 16개 사단을 이끌면서 전투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이다. 미군의 고귀한 희생 이 담겨 있는 한국의 육군참모총장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나는 당연히 예정에도 없던 미국 대통령 면담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다. 콜린스의 그런 태도 또한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거절하는 말투를 보였던 콜린스가 그 대목에서 갑자기 수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나왔다.

 그는 자신의 옆방에 있던 존 헐 대장을 불렀다. 헐 대장은 당시 육군참모차장이었다. 나중에 유엔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인물이기도 했다. 조금 있다가 그 헐 대장이 콜린스 총장 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콜린스 총장은 헐 대장에게 “백 총장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날 수 있게끔 당신이 연락을 취하라”고 했다. 헐 대장은 그 자리에서 “알았다”고만 짧게 대답하고 방을 나갔다. 그런 모든 과정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린스가 처음 거절했다가 바로 수세로 바뀌는 대목이 우선 그랬고, 그런 내 부탁을 들은 뒤 군말 없이 백악관에 연락을 취해 보겠다는 헐 대장의 태도 또한 그랬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훨씬 수월하게 풀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다시 회고해 볼 때도 가장 의아했던 대목은 콜린스 총장과 헐 대장 모두 내게 “당신이 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야 하느냐”는 것을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기로 한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이튿날 오전 10시에 나와 하우스만 소령, 남성인 대위는 백악관에 도착했다. 직원들이 출입하는 통용문 앞에 도착하니 경호원 한 명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별다른 수속은 없었다. 우리는 그저 그 경호원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실내 수영장을 지나 백악관 2층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룸(Oval room)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문 앞에 버티고 서 있던 경호원들이 우리 일행을 제지하는 것이었다. 경호원들은 하우스만 소령과 남성인 대위에게 “당신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의전(儀典)적인 일이야 백악관 내부 규정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굳이 동행한 사람들을 제지하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더구나 남성인 대위는 통역장교여서 수행하는 게 편리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나는 곧 저 문을 들어서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를 만나 한국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 이야기를 꺼내야 했기 때문이다. 문을 들어서자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백 장군, 반갑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잘 계십니까?” 나도 인사를 했다. “이 대통령께서 대통령께 정중하게 안부를 여쭈라고 했습니다.” 구면(舊面)은 역시 좋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2년 당선자 시절 한국 방문 때의 나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나를 잘 대해 줬다.

 자리에 앉은 뒤 대통령이 먼저 말을 꺼냈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곧 끝낼 것입니다. 휴전은 이미 기정사실입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인들이 휴전을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압니다. 그러나 휴전은 내가 대통령 선거에서 내걸었던 공약(公約)입니다. 그리고 참전한 유엔 국가들 또한 하루빨리 휴전을 하도록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강이 그런 취지였다.

 나는 대한민국의 입장을 자세히 설명했다. “각하, 그런 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휴전을 한다면 한국의 통일은 매우 어려워집니다.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한국인들의 심정을 잘 헤아리셔야 합니다.” 버크 제독과의 대화 뒤에 내가 잠을 못 이루고 오래 생각했던 말들이었다. 나는 또 “이승만 대통령께서도 북진 통일을 원하고 있지만 일반 한국인의 통일 열망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은 우리 국민 모두 간절히 바라는 사안입니다”고 간곡하게 설명했다. 아이젠하워는 그런 내 말을 듣다가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휴전에 앞서 우리에게 ‘개런티(guaranty·보장)’를 해 주셔야 합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은 지금 허허벌판의 폐허(廢墟)와 다름없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파괴된 헐벗은 나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북쪽에 공산군을 그대로 두고 휴전한다면 위험합니다”고 했다. 아이젠하워는 “어떤 방법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상호방위조약이 필요합니다.” 내가 말했다. 대통령은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미국은 유사시에 영국과 행동을 함께합니다. 상호방위조약은 그런 유럽 국가들과의 선례가 있으나 아시아 국가에서는 매우 매우 드문(very very rare) 케이스”라고 말했다.

백선엽 장군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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