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쓴 쌍둥이 성장기 우리 가족 역사책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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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경기도 수원의 이강석(맨 오른쪽)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21년 간 작성한 육아일기를 보고 있다. 왼쪽부터 아들 현재씨, 부인 최경화씨, 딸 현아씨.


‘얼굴 모르고 이름 짓지 않은 두 아이를 위해 앨범을 마련했다. 그들이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정리해 결혼할 때 선물로 주고 싶다.’(1991년 3월 5일) 이강석(53)·최경화(48)씨 부부가 21년간 함께 쓴 육아일기의 첫 구절이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이씨 부부의 집 책장 안엔 날짜가 적힌 파일이 가득하다. 모두 56권. A4용지로만 7000여 장이 넘는다. 한 권을 펼치자 검은색 펜으로 쓴 글이 한눈에 들어왔다.

 ‘태교가 중요하다는데 심리적 부담이 되는 것은 보지도 말하지도 말아야겠다.’(최경화·91년 3월 30일), ‘만산의 배는 사공이 두 명(쌍둥이)이라 좌우로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누워있던 아내가 몸을 반대로 움직이려면 도움이 필요했다.’(이강석·91년 8월)

 그해 9월 최씨는 딸 현아(20)와 아들 현재(20)를 제왕절개로 낳았다. 이들 부부가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부인 최씨가 결혼 5년 만에 임신을 하면서다. 그러나 복수가 차는 등 몸에 문제가 생기면서 병원에 입·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최씨는 입원기간에 일어난 몸의 변화와 감정 등을 수첩에 적어 내려갔다. 수첩의 남은 공간을 남편 이씨가 채우면서 자연스럽게 공동 육아일기가 됐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 낳은 우리 아이들의 백일이다. 신기하게도 애를 안으면 편하고 업으면 푸근한 느낌이 온다.’(최경화·91년 12월 17일) 메모처럼 짤막하게 정리한 글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한껏 묻어난다. ‘현아가 아파서 짜증을 낸다. 우유병을 집어 던진다. 또 아플까 봐, 짜증을 낼까 봐 무섭다.’(최경화·93년 5월 12일)

 해마다 찍은 아이들의 발도장 사진, 그림 낙서, 처음으로 이름을 쓴 종이 등 자료도 함께 모았다. 이씨는 “우리 가족에겐 역사책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일기장은 가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도 했다.

 육아일기는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씨 부부는 “현아와 현재가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들에게도 육아일기를 써줄 생각”이라며 “요즘 육아 부담 등으로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이가 많은데 ‘육아는 행복한 삶의 완성’이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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