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가 살아있다면 북한 개혁하려 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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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북한의 3대 세습에 침묵하고 용인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한국 좌파들의 영혼은 이제 죽었다고 봐야합니다.”

 김정일 후계체제를 비판하는 하태경(43·사진) 열린북한방송 대표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쿠바 혁명의 주역인) 체 게바라가 살아있었다면 북한을 개혁하려했을 것”이라며 북한의 부자 권력세습이 사회주의의 틀에도 벗어난 봉건왕조식 구태라는 점을 지적했다.

 하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 중이던 1991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대표를 평양에 보낸 배후로 지목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2년간 복역한 운동권 출신이다. 그런 그가 12일 김정일의 셋째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은 권력장악 과정과 암투 등을 다룬 책을 냈다. ‘북한의 3대세습과 왕자의 난’이란 부제가 붙은 『만화 김정은』(시대정신,175쪽) 이다.

 - 일반책이 아닌 만화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가 뭔가.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해 북한체제의 실상과 문제점을 제대로 알도록 만화로 만들었다.”

 - 신랄한 비판이 만화 곳곳에 눈에 띈다. 비판적 대북방송을 6년째 운영 중인 하 대표가 북한을 지나치게 보수적 시각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북한 내부의 실상을 그대로 전하는 걸 그런 식으로 비판한다면 받아들이겠다. 만화 김정은도 북한 내부 통신원 정보 등 신뢰할 내용을 추려 만들었다.”

 - 이 책은 어떤 효과를 겨냥하고 있나.

 “후계자 김정은을 알아야 북한을 알 수 있고 북한 군부를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은을 알면 왜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고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재연될 가능성이 있는지 감지할 수 있다.”

 - 새로운 내용도 담겼나.

 “김정은이 9살 때쯤 당 간부들과 함께 김일성의 항일혁명 활동지로 선전되는 중국 동북 3성을 비공개 방문했다는 후지모토 겐지(김정일 요리사로 일한 일본인)의 증언도 담았다. 2009년 4월 초 김정은이 이복 형인 김정남의 평양 근거지를 뒤졌다는 ‘우암각 습격사건’은 중앙선데이의 특종보도 내용을 참고했다.”

 - 전향한 운동권 출신이 김정일 후계 비판서를 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전향은 아니라고 본다. 노동당 가입 등 북한에 동조한 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운동권 시절 북한에 대해 우호적 생각을 가졌던 것은 맞다.”

 - 어떻게 비판적 대북인식을 갖게됐나.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95년 께 북·중 국경지역으로 가 탈북자 수백명을 만나면서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다. 전두환 독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행이 북녘 땅에서 저질러지고 있다는 점을 알게됐다. 주저없이 북한 민주화 투쟁을 결심했다.”

글=이영종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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