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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신국가회계제도 정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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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편호범
전 감사원 감사위원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회장

정부는 재정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2009년도부터 종전의 현금회계에서 기업이 쓰는 발생주의회계로 전환해 국가결산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요구하는 국제기준에 따르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새로 바뀐 회계제도의 조기 정착을 위해 국가회계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국가회계기준센터를 설립하고 회계직 공무원을 별도 직렬로 선발하도록 하는 내용이 그 일부다. 이 회계제도는 지난해까지 시범 적용한 후 올해 결산보고서부터는 정식으로 국회에 제출해 심의를 받게 된다.

 현금회계는 현금이 오가는 경우에만 비용과 수익을 계상하지만, 발생주의회계는 현금거래가 없어도 비용이나 수익이 발생하면 모두 계상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새로운 회계제도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정부로서는 중요한 개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제도가 재정건전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활동의 성적표가 그 기업의 결산서인 것처럼 국가의 경우도 결산서를 통해 국가 재정활동의 건전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이러한 회계제도의 개혁을 국가재정체계를 바꾸는 일대 혁신이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새 국가회계제도는 한마디로 국가의 자산과 부채 규모뿐만 아니라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 총규모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종전에는 국가자산으로 잡히지 않고 관리가 소홀했던 방대한 규모의 사회기반시설도 빠짐없이 자산으로 계상돼야 하기 때문에 국유재산 빼돌리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이들 자산의 관리비용 파악을 통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되는지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최근 다시 불거지는 국가부채 규모에 대한 논란도 새 회계제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진통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역시 재정 투명성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다. 역대 가장 많은 규모인 86조3000억원이 집행될 복지예산도 마찬가지다. 종전 방식은 단순히 주요 사업의 직접적인 집행내역만 제시한다. 보건복지부 본부 인건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새 회계는 200여 개 세부사업별로 직간접적인 모든 비용을 집계해 서로간의 대비가 가능하고 별도로 작성하기로 한 성과보고서와의 비교를 통해 지출된 비용들이 과연 적정한지에 대한 판단 근거를 제공해 준다.

 이렇게 중요한 국가회계제도 개혁의 성패는 국회 등 이해 당사자들이 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국회 입장에서는 새 회계제도가 오히려 복잡하고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회계제도로 되돌릴 수는 없다. 스마트폰이 기성세대에게 다루기가 어렵다고 해서 그 사용을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특히 요즈음은 각국의 재정 건전성이 큰 이슈가 되고 있고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기업의 성장을 위해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것과 같이 국가재정제도의 근간이 되는 새 회계제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편호범 전 감사원 감사위원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