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양 누비는 '수산 거부'…스페인 인터불고 그룹 권영호 회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바다는 노력하는 만큼 댓가가 주어지는 선의의 경쟁장 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저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떠나지 못합니다. "

스페인에서 인터불고(IB)그룹을 이끄는 권영호(權榮浩.59)회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바다는 매력적인 일터" 라고 먼저 강조했다.

지난 80년 설립된 모기업 IB는 아프리카 앙골라 연안에서 민어.문어.참치잡이에 나선지 20년만에 연 매출 1억달러 규모의 큰 회사로 성장했다.

국내 원양업체와 비교하면 동원.사조 다음쯤 된다.

유럽에선 가장 성공한 한국인 사업가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IB의 전체 원양어선은 30여척. 그 중 25척이 대서양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 선원과 관리인 9백여명은 현지 앙골라인들이다.

IB는 87년 앙골라 지사를 내 앙골라의 첫 해외합작기업으로 기록돼 있다.

앙골라정부는 고용과 친선 등에 기여한 공로로 權회장을 앙골라주재 한국명예영사로 임명했다.

權회장은 "해마다 연말이면 앙골라 근해로 가 매일 1척씩 직접 배를 타고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문제점을 해결하고 있다" 며 "뱃사람들과 어울릴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고 말한다.

그의 삶은 지금껏 한번도 바다를 떠난 적이 없다.

고향은 울진 죽변 바닷가. 스스로를 "어민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에 시달렸다" 고 표현했다.

그는 가난을 벗기 위해 대학을 다니다 26살이라는 나이에 원양어선 기관장이 됐다.

5대양은 그때부터 權회장의 일터였다.

스페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2년 대림수산 주재원으로 라스팔마스에 정착하면서부터. 그는 바다와의 인연에 이끌려 샐러리맨을 청산하고 80년 2월 현지에서 창업이란 결단을 내린다. 폐선 직전의 고철선을 일본인으로부터 사들여 수리해 원양어업을 시작한 것.

IB는 20년간 원양어업에서 냉동업과 조선.유통.무역.건설.호텔업 등으로 잇따라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현재는 대구파크호텔 등 국내 8개사와 스페인.앙골라.네덜란드.중국 등 해외 8개사 등 16개 계열사를 거느린 다국적 기업이다.

그는 "너무 수산업에만 집착하면 기업을 지키기 어려워 경영을 다각화했다" 고 말한다.

다국적기업을 거느리다 보니 그는 1년에 5개월쯤은 해외출장으로 보낸다.

아프리카와 중국에서 3~4개월, 국내서는 한 달쯤을 머무른다. 출장중엔 노트북 PC와 팩시밀리가 '이동 회장실' 이 된다.

IB가족은 줄잡아 3천여명. 앙골라 외에 중국교포들도 6백여명이 있다. 88년부터 지린(吉林)성 교포들을 선원 등으로 고용해온 것. 그 인연 때문에 중국에 병원을 지었고 지린대에는 희사할 단과대학을 짓는 중이다.

고향에도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86년 고향 울진에 동영장학재단을 설립, 해마다 5백여명에게 5억5천여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도 고향으로 여긴다. 대구파크호텔 회장인 그는 외국에서 번 돈으로 대구에서 뜻있는 사업을 펼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2001년 완공예정인 초특급호텔이다.

權회장은 "대구는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고도 국제적인 수준의 호텔은 없다" 며 "그런데도 IMF체제 이후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어 수익성을 따질 것 없이 신축을 결심했다" 고 말한다.

이 호텔에는 스페인문화원도 유치할 계획. 완공되면 호텔 이름도 파크에서 IB로 바꾼다는 구상.
이 호텔은 벌써 2001년 JC세계대회장과 2002년 월드컵 대구지역본부로 예약돼 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지만 기업인은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며 보람을 느낍니다. "

송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