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엔 ‘유상준’ 경찰엔 ‘유상균’ 이름·사무실 카멜레온처럼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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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식당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의 핵심인 식당 운영업자 유상봉(65)씨의 로비 행각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게 투자금을 줬다가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유씨를 가리켜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업과 관련해 유씨와 인연을 맺은 이들 사이에 유씨는 주택사업가·고속도로휴게소 운영자 등으로 알려져 있다. 식당 운영 등에 대한 투자가 성사되면 계약서를 쓰고 공증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설마 투자금을 떼일 줄은 몰랐다”는 게 공통된 증언이다.

 서울 서초동에서 참치전문점을 운영하던 송모씨. 그가 유씨를 만난 것은 2008년이었다. 은행에 다니던 지인이 “우리 은행과 자주 거래하는 주택사업가”라고 유씨를 소개한 것이다. 얼마 뒤 유씨는 송씨에게 “함바집 운영권을 땄으니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지인 역시 3억여원을 투자했다는 얘기에 송씨는 가게까지 정리해 4억여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유씨에게선 소식이 없었다. 유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번호’라는 소리만 나왔다. 명함에 적혀 있는 사무실도 실체가 없었다고 한다.

 송씨는 기자와 만나 “경찰에 유씨를 고소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경찰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유씨 뒤에 경찰청 고위간부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은 피해자들이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유씨에게 3억여원을 투자했다는 신모씨는 “내가 아는 피해자만 30여 명이며, 피해액수는 100억원대에 달한다”며 “자살한 사람도 2명이나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특히 휴대전화 13개를 번갈아 사용하는가 하면 이름도 수시로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관계 인사들에겐 ‘유상준’이란 이름을, 경찰 인사들에게는 ‘유상균’이란 이름을 썼다. 사무실도 자주 옮겼다. 한 피해자는 “사무실에 함께 간 적이 있는데 명함 만드는 기계가 있었다”고 전했다. 유씨는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건설업체 임원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그에게서 억대의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화건설 이군포 사장은 재판 과정에서 “유씨가 고위공직자를 많이 아는 것처럼 행세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씨는 기부금·후원금 등 갖가지 명목을 내세워 금품 로비를 벌였다고 한다.

정선언·심새롬 기자

◆중앙일보는 오늘자부터 공사현장 식당 운영업자 유상봉(65)씨의 실명을 싣습니다. 그간 ‘유모씨’로 익명 보도를 해왔으나 검찰 수사가 경찰과 정·관계를 상대로 한 전방위 로비 의혹으로 확대되면서 독자에 대한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실명을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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