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성 상원 의원 17명 모두 염색… 왜? 외모 차별 피하려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0호 20면

예쁜 여자는 자신보다 학력·소득이 높은 남자와 결혼할 확률이 높다. 메릴린 먼로는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1953)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부자라는 건 여자가 예쁘다는 것과 같다는 걸 모르시나요. 예쁘다고 해서 그 여자랑 결혼하는 건 아니지만 예쁜 게 진짜 도움이 돼요.”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 링컨, 처칠…. 못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얼굴이 좌우 불균형이었던 사르트르도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사르트르는 그의 철학이 자신의 추함과 평생 투쟁한 결과물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소크라테스도 진리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으로 자신의 추함에 ‘복수’했다. 그러나 사회에 만연된 외모 차별에는 사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외모 차별의 실상이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강력하다는 것을 지난 30여 년간 심리학·경제학 연구자들이 밝혀냈다.

외모 차별의 실태, 원인 그리고 해법

외모 차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의 모든 과정에서 작용한다. 잘생기면 이익, 못생기면 불이익이 있다. 외모 차별은 특히 채용·소득·승진 등 직장 생활의 모든 영역을 왜곡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채용담당자 중 57%는 “잘생기지 못한 구직자는 자격을 갖췄더라도 채용되기 힘들다”고 응답했다.

경제학자 대니얼 해머메시에 따르면 잘생긴 사람들은 평생 근로기간에 25만 달러를 더 번다. 보통 외모의 사람들은 못생긴 사람들보다 5~6% 더 벌고, 잘생긴 사람은 보통 외모의 사람들보다 3~8% 더 번다.

영화 ‘시카고’(2002)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무죄 판결을 받는 데 성공한다. 잘생긴 사람은 못생긴 사람들보다 낮은 형량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게 심리학 실험 결과 밝혀졌다. [코리아픽쳐스 제공]

교육 현장에서도 잘생긴 교수와 잘생긴 학생은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5월 코넬대 연구진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형사 재판에서 못생긴 사람의 형량은 22개월 더 길다. 못생긴 여자에 비해 예쁜 여자가 결혼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예쁜 여자는 자신보다 소득이나 교육 수준이 높은 남성과 결혼할 확률도 높다.

외모 차별은 글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병원에 ‘도착 시 사망(dead on arrival)’ 상태로 도착하면 병원 측이 소생술을 실시할 가능성은 잘생긴 사람인 경우에 더 높다. 차별은 그 부산물로 역차별을 낳기도 한다. ‘너무 예쁘고 섹시해’ 해고당하거나 승진에서 누락됐다는 지구촌 기사가 외모 역차별의 존재를 예시한다.

외모 차별이 존재하는 근본 바탕에는 미추(美醜)의 구별이 있다. 인류 전체에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은 인종이나 국가·개인 차원에서 조금씩 달라진다.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예컨대 19세기 말 미국에서 마른 체형은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미추의 구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불변이다.

미추 구별의 뿌리는 본능이다. 유아들도 잘생긴 얼굴을 더 오래 더 집중해 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펜실베이니아대 인그리드 올슨은 실험 대상에게 아주 잘생기거나 아주 못생긴 얼굴들을 100분의 1초간 스크린에 비췄다. 피실험자들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얼굴의 미추를 판별할 수 있었다.

미추 구별은 ‘미모 편견(beauty bias)’을 낳는다. 잘생긴 사람은 못 생긴 사람보다 더 정직하고, 친절하고, 정신적·신체적으로 건강하고, 똑똑하다는 것이다. 부모들도 예쁜 자식, 못생긴 자식에 대한 편견이 있다. 아이가 투정을 부리면 예쁜 아이는 ‘상황적인 요인’ 때문에 그렇다고 이해해 주는 반면 못생긴 아이에 대해선 ‘성격이 나빠 그렇다’고 부모들이 판단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모 편견은 진화의 산물이다. 미모는 건강과 바람직한 유전자를 식별해 주는 길잡이로 무의식에 뿌리내리고 있다. 인지학자 낸시 에트코프는 자신의 저서 미자생존(美者生存·Survival of the Prettiest)(2000)에서 “아름다움은 즐거움을 유발하고, 주의(注意)를 고정시키며, 우리 유전자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동을 재촉한다”고 주장했다.
외모 차별에 대한 해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선 외모보다는 자신감이 더 중요하다는 개인 차원의 자각이 필요하다. 자기평가(self-assessment)와 자기지각(self-perception)은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남들이 아무리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해도 ‘나는 잘생겼다’고 생각하면 긍정적인 자질을 구현할 수 있다. 과학이 전하는 기쁜 소식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친숙해지면 외모는 덜 중요하게 된다. 외모의 차이가 평가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든다.

외모와 긍정·부정적 자질의 인과관계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잘생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특징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긍정적인 특징을 지닌 사람들이 잘생겼다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즉 잘생긴 사람이 착하고 똑똑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 잘생기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차원의 외모 차별 극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법이다. 우리나라는 용모 차별 금지가 포함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준비 중이다. 미국 사례는 법적 장치 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국에는 외모 차별을 금지하는 연방정부 차원의 법적 장치가 없다. 외모 차별의 ‘희생자’가 소송을 제기하려면 민권법(1964), 동등임금법(1963), 연령차별금지법(1967), 장애인법(1990)을 통할 수밖에 없다. 법적 장치가 있는 곳은 미시간주와 워싱턴DC, 샌프란시스코 등 6개 도시·카운티다.

최근 미국에서도 연방정부 차원의 외모 차별 금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선봉에는 미모 편견(Beauty Bias)(2010)의 저자인 스탠퍼드대 드보라 로드 교수가 있다.

반대도 만만치 않다. 작가인 앤드루 설리번은 “못생긴 사람, 키 작은 사람, 대머리, 피골이 상접한 사람, 멍청한 사람에 대한 차별 금지를 완료한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라며 외모 차별 금지법에 반대한다. 광의로는 외모에 옷차림, 헤어스타일까지 포함된다. 외모 차별 금지법이 생긴다면 회사의 드레스 코드에 대한 회사원의 ‘저항’도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소송 좋아하는 사회(litigious society)’인 미국 사회에 ‘우스꽝스러운’ 외모 차별 소송이 봇물 터지듯 쏟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로드 교수는 외모 차별에 대한 진정 건수가 도시·카운티의 경우 0~9건, 미시간주의 경우는 30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미국에서도 외모 차별의 최대 희생자는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여성계는 외모 차별 금지 입법화 운동이 본격화하지 못하고 있다. 가난·강간·가정 내 폭행과 같이 ‘시급한’ 여성 문제들도 아직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모 차별은 여성 억압의 도구이지만 ‘미모(美貌)는 여성의 힘’이기도 하다는 시각도 있다. 페미니스트 작가 나오미 울프는 미모 신화(The Beauty Myth)(1991)에서 “일·사랑에 성공을 거두는 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은 여성 해방의 성과를 희생해 가며 가슴 성형, 다이어트에 매달린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여성 상원의원(현재 17명) 중에서 ‘흰 머리’는 없다. 외모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모두 염색을 하기 때문이다.

외모 차별 금지에 시큰둥한 사람들은 “외모 차별 금지법 다음에는 지능 차별 금지법이냐”고 묻는다. 업무와 무관한 외모 기준을 철폐하듯 업무와 무관하면 지능에 대해서도 차별을 폐지할 것인지를 묻는 조소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차별이 철폐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