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금융 교수, 밤엔 록큰롤 클럽 주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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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22면

중국 베이징의‘신촌’인 청푸거리. 양대 명문인 베이징대와 칭화대가 주변에 있다. 젊은이들의 거리답게 그곳엔 늘 새로운 것들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더그라운드밴드 전문인‘클럽 D-22(사진)’다. 시끄러운 록 사운드를 헤치고 클럽 D-22에 들어서면 건장한 서구인이 맞는다. 바로 클럽의 주인장인 마이클 페티스 베이징대 교수다. 그는 강의가 없는 날이면 D-22에서 바텐더를 맡는다. 2008년 페티스 교수는 동업자 2명과 함께 거금 22만 달러(약 2억5000만원)를 모아 D-22를 차렸다. 동업자 가운데 한 명은 투자은행 골드먼삭스 출신이다.

페티스는

 페티스 교수는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1960년대 미국과 비슷하다”며“경제는 호황이고 대중문화가 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분야 교수로서 중국 현대사의 최대 호황을 눈으로 관찰하면서 동시에 클럽 주인으로서 중국 대중의 문화적 에너지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그는 기획사까지 운영하고 있다. 재능 있는 록 음악 뮤지션들을 발굴해 키우고 있다. 그는 클럽과 기획사 운영 때문에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매주 1000달러씩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그래도 마냥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페티스 교수는 8년째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2003년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교수로 영입됐다. 이전까지는 월가에서 잘나가는 채권 트레이더이면서 투자은행가였다. 마지막 근무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JP모건에 흡수된 베어스턴스였다. 그는 2003년까지 14년 동안 한국과 멕시코·필리핀·아르헨티나 등의 채권을 인수해 매매했다. 신흥시장 경험이 많았던 그는 2001년 아르헨티나 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해 상당한 명성도 얻었다. 그는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1997년에 경험했듯이…” “한국이 90년대 초반에 대출 규제를 풀었듯이…” 등의 말을 자주 했다. 그만큼 한국에 대해서도 알 만큼 안다는 방증이다.

 페티스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mpettis.com)에 엄청나게 많은 글을 올리고 있다. 중국에 관심이 많은 월가 이코노미스트나 펀드매니저라면 하루에 한 번은 들러 그의 글을 읽는다고 한다. “그의 분석이나 전망은 아주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라고 미국의 유명 컨설팅업체인 로디엄그룹의 파트너 대니얼 로슨이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페티스 교수는 전형적인 코스모폴리탄이다. 그는 58년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 청소년기는 남미 페루와 파키스탄·아이티·튀니지에서 보냈다. 고등학교는 고향인 스페인에서 졸업했다. 그는 75년 미국 컬럼비아대에 들어갔다. 그때까지 그가 미국에서 보낸 기간은 모두 합쳐 2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컬럼비아대에서 국제 관계와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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