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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신동이 거장이 되려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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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05면

한 살도 안 된 아이가 노래를 합니다. 몇 달 뒤엔 장난감 피아노를 제법 두드리고요. 당신의 아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아마 영재교육원에 데려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나요.
에르빈 니레지하지(Ervin Nyiregyhazi)의 부모도 그랬습니다. 1903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아이는 6세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정신분석연구소의 ‘연구 대상’이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15세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데뷔했습니다. 연주곡은 프란츠 리스트의 협주곡 2번. 리스트는 피아노 테크닉의 역사를 다시 썼던 천재죠. 니레지하지는 살아 돌아온 리스트 같았다고 합니다.
신동이 성공하는 속도는 어지러울 정도였죠. 유럽을 평정한 니레지하지는 신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17세에 뉴욕 카네기홀에서 데뷔했고,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연주 중 하나를 기록합니다. 당시 음악계의 권력을 쥐고 있던 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는 지휘자 오토 클렘페러에게 “이런 피아니스트는 처음”이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화려한 무대와 찬사를 다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니레지하지는 자신의 매니저를 고소했습니다. ‘내 실력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성악ㆍ바이올린 반주를 시킨다’는 거였죠. 재판에서 졌습니다. 재산이고 집이고 다 빼앗기고 거리로 나왔죠.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역에서 노숙했습니다.
끝이 아닙니다. 아홉 번 결혼했고, 여덟 번째 부인과는 ‘베토벤 연주할 때 하품했다’는 이유로 헤어졌습니다. 평생 지나치게 많은 술을 마셨습니다. 1930년대부터 아예 종적을 감췄고요. 사람들은 그를 잊었고, 잊혀진 천재는 희망도 야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할리우드 영화에 들어갈 곡을 연주했을 뿐입니다. 연습할 피아노도 없었습니다. “나는 연습이 필요 없다. 머릿속에 다 있다”고 했고요.
‘신동’의 동의어인 모차르트는 35세에 세상을 떠났죠. 여든 살까지 살았으면 두 배로 대단했을까요? 니레지하지는 여든넷까지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평전ㆍ다큐멘터리 등을 보면 지독히 불행했던 인생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열두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혼자 된 어머니는 아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집안의 희망이던 천재 아들은 장성한 뒤 “어머니가 나치 수용소에서 숨을 거둔 건 정말 잘된 일”이라고 일갈합니다.
손열음ㆍ김선욱 등 피아니스트를 잇따라 길러낸 ‘명조련사’, 김대진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이 가진 아이들이 있다. 그걸 제어하도록 돕는 일이 정말 어렵다”고요. 니레지하지의 연주를 들어보면 이런 제동장치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빠르고 화려하기만 합니다. 과도한 천재성이 연주를 망칠 때까지 그를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신동을 거장으로 성장시키는 건 뭘까요. 연습? 행운? 사회성? 니레지하지에겐 ‘행복’이 필요했습니다. 도와주고 사랑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한 살배기 아이에게 영재교육원 대신 따뜻한 사람들을 마련해 주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A 재능보다 필요한 건 행복감이죠
※클래식 음악에 대한 궁금증을 김호정 기자의 e-메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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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다. 서울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졸업하고 입사, 서울시청ㆍ경찰서 출입기자를 거쳐 문화부에서 음악을 맡았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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