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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1995년 경회루 연못서 찾은 옥새…그런데 새겨진 문구가 이상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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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황제의 칼데라
강유일 지음, 문학동네
408쪽, 1만2000원

지난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에 맞춰 작심하고 쓴 듯한 장편소설이다. 그렇다고 역사소설인 것만도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왕국의 성쇠, 그에 얽힌 개인의 운명에 관한 ‘퍼즐 맞추기’가 펼쳐진다.

 조선 왕조의 명운이 바람 앞의 등불 형국이던 1876년 경복궁에 대화재가 발생한다. 830여 칸, 대부분의 궁궐 건물이 불탄다. 여기까지는 알려진 얘기다. 화재와 함께 왕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황금 옥새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게 소설의 ‘장치’다.

옥새는 그로부터 100년이 훌쩍 지난 1995년 경회루 연못인 누지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뜻밖에도 옥새의 인면(印面)에 새겨진 문구는 ‘대조선국주상지보(大朝鮮國主上之寶)’가 아닌 ‘대조선국만세지보(大朝鮮國萬歲之寶)’다. 누군가 옥새의 문구를 바꾼 것이다. 죽음을 면치 못할 중죄다.

 소설은 추리소설 구조를 고집하지 않는다. 옥새 장인이 고종의 묵인 아래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을 선선히 밝힌다.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옥새 장인의 손자 우난세다. 독일로 망명해 판사가 된 그가 옥새의 비밀, 비극의 가족사를 파헤치는 과정이 소설의 뼈대다.

 진실은 고종이 스스로 죽음을 택해 불멸·영원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선택이라기 보다는 관념적이고 미학적인 결단이다. 이런 무거운 주제가 저자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문체와 잘 어울리지 싶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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