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호, 신나게 ‘씹다가’떠납니다 … 이젠 감동 코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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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8개월간 정들었던 왕비호는 떠나지만 “개그콘서트 포에버~”를 외치는 개그맨 윤형빈. 독설은 독설일 뿐, 실제 성격은 예의 바르고 차분한 편이라고 했다. [김성룡 기자]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시청자들, 이번 주부터 허전하겠다. ‘봉숭아학당’이 끝날 때쯤 “누가 수업 끝이래~!” 하면서 등장하던 ‘왕비호’ 윤형빈(31)이 하차했기 때문.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면전에 놓고 “누구~?!”(발음은 ‘뉴귀?’에 가까움)하며 자근자근 꼬집던 윤형빈. 가차 없는 품평과 허세 들추기로 독설 개그의 ‘종결자’(대적할 상대가 없을 최강자라는 뜻의 인터넷 은어)로 군림했던 ‘왕비호’의 퇴장이다.

 ‘개콘’ 녹화가 있던 5일 그를 만났다. “이렇게 한가한 건 몇 년 새 처음”이라면서도 시원섭섭해했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아 지난 가을부터 그만하려고 했어요. 그래도 단벌 옷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니 설레기도, 걱정되기도 하네요.”

 그럴 만도 하다. 2008년 4월부터 2년 8개월 간 한 주도 빠짐 없이 ‘개콘’의 대미를 장식했던 그다. 진한 아이라인 메이크업에 부담스러운 핫 팬츠, 과감한 롱 부츠 차림(의상 컨셉트도 본인이 직접 짰다)의 왕비호는 등장부터 파격이었다. 마침 김구라(‘황금어장-라디오스타’), 정재용(‘순결한 19’) 등이 독한 입담으로 뜨던 때였다. ‘비호감’ 캐릭터를 ‘개콘’에 도입하자고 생각했고, 첫 타깃을 동방신기·슈퍼주니어 같은 아이돌로 잡았다.

 “예상대로 욕 엄청 먹었죠. ‘너무 한다’ ‘재미 있다’가 엇갈리면서 ‘대박 난다’고 확신했어요. PD가 ‘이 코너가 잘 돼도 그 다음에 힘들어질 수 있다’며 걱정했을 정도로 강한 캐릭터였죠.”

 왕비호는 “트렌드를 잘 짚은 결과”다. “착한 공익성 예능이 지겨워지던 시점에 삐딱하게 보이는 걸 콕콕 집어내는 역할”이었다. 연예인의 신비주의가 퇴색하던 시점과도 맞물렸다. 사회적으로는 위선과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이다. 결과적으로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의 쾌감을 선사했다.

 코너가 자리를 굳히면서 연예인들이 “나도 씹어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원칙은 지켰다. 첫째, 재미있어야 한다. (홍보성 출연은 거절했다) 둘째, 독설을 해도 결국 그 팀(개인)을 돋보이게 한다.

 “FT 아일랜드를 불러놓고 ‘립싱크는 들어봤어도 핸드싱크는 처음 들었다’고 말하면 비꼬는 것 같잖아요. 그럴 때 덧붙이죠. ‘그래 알아, 방송 여건이 라이브 연주할 수 있는 거 아니란 것’. 애정과 소신으로 할 말을 하니, 연예인들도 서운해 하긴커녕 즐기다 가더라고요.”

 정치인들도 출연을 타진해 왔다. 고심 끝에 거절했다. “개그란 게 공감이 중요한데 시청자가 관심 없는 대상을 두고 코미디를 할 순 없거든요. 사람들이 시사풍자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는데, 요즘 젊은 층은 억압 받던 시대처럼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연예인을 빗대 다른 걸 아우르는 게 낫죠.”

 ‘왕비호’를 그만 둔 이유 중 하나가 트렌드 변화이기도 하다. 리얼 버라이어티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 출연 중인 그는 요즘 예능이 ‘남격’ ‘무한도전-레슬링’에서 보이듯 ‘감동 코드’라고 진단했다.

 “이제 독설도 지쳤고, 다른 얘깃거리를 찾는 것 같아요. 합창단 같은 경우는 하면서도 ‘이 감격이 화면으로 잘 전달될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경험이었어요. 박칼린 선생님을 두고 카리스마·리더십, 그런 말씀 많이 하는데, 그냥 따뜻했어요. 시키는 대로 하면 다 잘 될 것 같은 믿음이랄까.”

‘남격’을 하면서 또 깊이 영향 받은 게 선배 이경규다. “카메라 없는 상황에서도 전체 그림을 보면서 하나하나 살리려고 노력하세요. 쉰 넘어도 현역으로 연예대상을 받았으니 후배들이 앞으로 갈 길을 닦아주신 거죠.”

  그가 추구하는 코미디도 이경규가 강조하듯 ‘사람 냄새’ 나는 웃음. 새로 구상 중인 코너도 그런 걸 담으려고 한다. “이를테면 개그맨 가장의 비애랄까. 아빠가 돈 벌려고 저렇게 힘들구나. 개그가 말장난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저런 삶이 있지, 사람이 있지 그런 걸 짚어주는 웃음이었으면 해요.”

글=강혜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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