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 투자는 중·조 고위급 합작” 김정일·후진타오 작년 합의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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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중국 창춘에서 만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중국 베이징의 국유기업 상지관군투자유한공사(商地冠群投資有限公司·이하 상지공사)의 20억 달러 대북 투자계획은 북·중 동맹의 또 다른 상징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금융제재 속에서 중국 국유기업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 북한에 탈출구를 마련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지공사의 투자 의향서 제1항인 “이번 합작은 중·조 두 나라 고위급의 신중한 역사의식을 갖춘 전략적 합작”이라는 구절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번 투자가 지난해 5월과 8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방중했을 때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과 논의했던 사안임을 내비치고 있다. 북· 중 경제협력의 방침은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이 참여하며, 시장원리에 입각해 운영한다(政府引渡, 企業參與, 市場運作)’이다. 이는 원자바오 총리가 2006년 1월 방중한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전달한 내용으로, 북· 중 경협은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투자는 2009년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온가보) 총리의 방북 이후 중국 측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다롄(大連)의 창리(創立)그룹이 그해 11월 나진항 1호 부두에 대한 10년 운영· 개발권을 확보했다. 1년여 만에 다시 상지공사가 나서 중국이 나선경제특구 개발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됐다. 중국의 대북 투자는 북·중 관계에 국한된 게 아니다. 여러 가지 전략적 요소도 저울질한 것으로 보인다. 나진항은 중국에 동해를 통한 시장개척 측면에서 긴요하다. 나선경제특구를 대일본·동남아 수출입 창구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중국의 동북3성이 이용할 수 있는 항구는 현재 다롄(大連)항· 단둥(丹東)항 두 곳뿐이다. 그러나 두 항구에는 물량이 폭주하고 있다. 중국이 대체 항구를 나선항에서 찾았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의 경우 나진항이 다롄·단둥항에 비해 훨씬 가깝다. 훈춘~다롄항은 거리가 1300km이지만, 훈춘~나진항은 93km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가 나선 경제특구에 공을 들여온 이유다. 중국이 동북3성 개발계획인 ‘창지투(長吉圖: 창춘-지린-투먼) 개발·개방 선도구’ 사업에 훈춘~나진항 고속도로 건설을 포함시킨 것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중국의 대북 투자를 북한 급변사태와 연관시키는 시각도 있다. 북한 급변사태 시 한· 미· 일이 동해로 접근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이 나선경제특구에 관심을 가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옛소련이 1980년대 나진항을 군사기지로 활용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중 수교로 소련에 안보를 의존했다. 부동항이 필요했던 소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미(對美) 견제용으로 군사기지를 요구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북한의 급변사태 때 주도권을 잡기 위해 나진항에 진출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광물자원에 대한 선점(先占)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중국의 대북 경제 진출과 북한의 종속은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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