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나는 남편과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편 살해한 조선 여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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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성지역의 각종 명소·상점 등을 소개한 『대경성사진첩』(중앙정보사, 1937)에 실린 구도 다케조의 ‘구도 부인과 병원’ 전경. 경성부 북미창정(北米倉町, 오늘날 북창동) 94번지에 소재. 조선여성의 남편살해 범죄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던 구도는 암 치료에 라듐 방사선요법을 도입하고 이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글도 썼다(‘암과 라듸움’, ‘매일신보’, 1931.4.3~7).

독일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조선에서 부인과 전문의로 활동한 구도 다케조(工藤武城)라는 일본인 의사가 ‘조선 특유의 범죄, 본부살해범의 부인과학적 고찰’(1933.2~8)이라는 흥미로운 논문을 총독부의 선전용 잡지 ‘조선(朝鮮)’에 연재했다.

 구도는 총독부의 통계연표 등을 분석해 ‘본부살해(本夫殺害)’, 즉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범죄가 조선에서 특히 많이 일어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조선의 여성살인범은 남성살인범 100명당 88명에 달해 일본 여성의 9배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도 이 중에서 본부살해범의 수(여성살인범 중 본부살해범이 63%)를 빼고 나면, 그 비율은 일본이나 다른 나라 여성범죄율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본부살해는 조선만의 특수한 여성범죄 형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도는 이 논문에서 형무소 수감자들을 심층 조사해 조선의 본부살해범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범인 여성, 범죄의 대상이 된 남편, 범죄의 성격 및 방법, 처벌, 범죄의 원인과 대책 등 본부살해 범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망라했다. 예를 들면 범인인 여성들은 선천적으로는 신체와 정신에 어떠한 문제점도 없었으나 남편 및 시부모의 학대와 착취, 부부관계의 불만이나 고통 등 결혼 후의 환경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기회성’ 범죄자라고 한다. 살해 방법은 독살(毒殺)이 70%를 차지했고, 범행이 가장 빈번한 시기는 기온이 가장 쾌적한 영상 10~20도인 4·5·9·10월이라고 한다. 그리고 범죄 방지 대책으로는 유교의 철폐, 법적인 엄격한 통제 및 처벌, 여성교육, 그리고 부인생리에 대한 지식 보급을 들었다.

 이 논문은 조선의 신문에서도 ‘조선의 특수범죄 본부살해의 참극’(‘조선중앙일보’, 1933.10.9~11), ‘본부살해의 사회적 고찰’(‘동아일보’, 1933. 12.9~24) 등으로 소개되었다. 조선의 언론이 생각한 이 범죄의 주된 원인은 불합리한 결혼제도였다. 그들은 조혼·늑혼(勒婚)·매매혼 등의 인습이 사라지면 조선 여성들의 비극도, 끔찍한 범죄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러한 원인들이 전부는 아니다. 구도도 조선의 언론도 여기에 개입된 빈곤의 문제는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인지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조혼이나 강제결혼이 거의 사라진 2010년에도 한국 부부의 절반 이상이 부부폭력을 겪고 있는 이유가 경제적 여건의 악화이듯,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 한 가정 폭력의 악순환은 멈추기 어렵다. 그 폭력의 끝이 80년 전의 저 ‘본부살해’의 비극처럼 되지 않기 위해 지금 여기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