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김영희 칼럼

공짜 통일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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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북한의 내부변화 유도에 초점을 맞춘 통일부의 새해 대북정책은 공허하고 불안하다. 그 배후에는 북한 체제를 흔들어 통일을 앞당기겠다는 큰 그림이 어른거린다. 흡수통일을 한다는 말인데 합당한 수단의 제시가 없다.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북한 체제 붕괴와 통일로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정책일까.

 화폐개혁 실패와 장마당의 축소 따위로 살기가 고단한 북한 주민들 사이에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걸 먼저 말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23일 사회통합위원회 포럼 참가자들과의 오찬회의에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북한 정권은 그 변화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12월 9일 말레이시아 방문 중에 교민들과 만나 북한의 내부변화를 다시 언급하고 통일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대통령의 말을 받아 북한의 변화 유도를 새해 대북정책 추진목표의 하나로 제시한 것을 보면 정부는 인적 정보(Human intelligence)를 통해 북한의 내부변화가 체제붕괴도 가져올 수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내부의 심각한 변화설이라는 게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라디오 방송국은 굶주림에 절망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마주 보는 중국의 단둥 일대에서도 우리 정부에 듣기 좋은 ‘정보’를 많이 생산한다. 그들의 말과 보도는 검증되지 않은 채 희망사항이라는 필터를 거쳐 한국 당국자들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북한의 변화가 의미 있는 수준이라고 하자. 거기에 우리가 작용할 현실적 수단이 있는가. 풍선 날리고 확성기 방송으로 북한 주민들을 궐기시킬 수 있는가. 북한 내부의 변화를 촉진하는 것은 공개적으로 수행할 정책이 아니라 은밀히 수행할 대북공작이다. 흡수통일을 목표로 하는 북한 체제 흔들기라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 그랜드 바긴 제안은 폐기된다는 의미다. 북한의 변화 유도가 비핵·개방·3000과 그랜드 바긴의 대안정책이 될 수 있는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북한 내부의 변화에 편승해 흡수통일을 정책으로 세우는 것은 황당한 통일 무임승차, 공짜 통일을 하겠다는 발상이다. 통일부의 개념적·전략적인 사고가 아쉽다.

 통일부의 정책이 이 대통령의 생각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이 대통령은 강온 양면을 구사한다. 한편으로는 북한 내부의 변화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를 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북한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 않은가. 천안함과 연평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싸고 요란하게 돌아가는 4강의 움직임을 보면 한국의 정책도 북한 압박과 대화 제스처의 병행과 균형이 절실하다. 북한 비핵화는 지상명령이다. 그래서 언젠가 6자회담의 재개는 불가피하다. 6자회담에 앞서 남북대화를 먼저 하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북한이 그 틈을 파고들어 남북 당국자 간 대화를 거듭 제안하고 있다. 통일부 방식으로는 한·미, 한·중 공조도 흔들릴 수 있다.

 남북대화 재개의 대전제는 튼튼한 안보다. 그것이 천안함과 연평도의 준엄한 명령이다. 이런 전제만 확실하면 국민소득이 북한의 37배나 되는 우리가 북한에 유연성을 보일 여지는 넓다. 강경 일변도 정책으로는 긴장만 고조시킬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통일부는 북한 체제 흔들기에 효과적인 방법을 못 보는 것 같다. 탈북자 2만 명이 남한에서 2등 시민으로 산다. 북한 주민들을 동요시키려면 탈북자들 사이에서 성공담이 많이 나와야 한다. 탈북자들의 남한 생활이 행복하면 그 소식은 풍선이나 확성기보다 더한 파괴력을 갖고 북한 전역에 퍼질 것이다. 통일부는 한·미 공조와 한·중 관계에 불협화음을 내지 말고, 중국과 북한에 급변사태 조장이라는 빌미를 주지 않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 정부·정당·단체가 연합성명으로, 신문들이 공동사설로 남북회담을 제안한 것은 평화공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통일부가 북한의 대화공세를 남한 사회갈등 선동용이라고 일축한 것은 성급하다. 남한 사회가 그 정도로 갈등할 만큼 취약한가. 통일부는 남북관계를 지리적으로는 동북아 차원, 시간적으로는 역사적 안목, 외교적으로는 한-미·한-중 관계의 틀에서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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