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ve 법정] 한명숙 전 총리 ‘9억 불법자금’ 3차 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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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510호 형사법정의 스케치. 재판장을 바라보며 증인석에 선 사람 중 맨 왼쪽이 한만호씨다. 한 전 총리는 오른쪽 피고인석에 앉아 있어서 잘보이지 않는다. 이날 검찰과 변호인단은 한만호씨가 수감 중에 가족 등을 접견하면서 한 말을 공개해야 하는지를 놓고 팽팽히 맞섰다. [스케치=김회룡 기자]

법정에선 녹음기도, 동영상·사진 카메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펜과 종이만이 재판 현장을 전할 수 있다. 본지는 중요 사건에 대해 법정 내의 공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라이브 법정’을 마련했다.

4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510호 형사법정. 한명숙(67) 전 총리가 “할 말이 있다”며 피고인석에서 일어섰다. 한 전 총리는 한신건영 전 대표 한만호(50·수감 중)씨로부터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한 전 총리=사실 제가 총리까지 하고 검찰을 관할하는 지위에 있었는데…검찰 개혁이 정말 필요하다. 형제·사돈의 팔촌까지 계좌 추적해 표로 만들어서 이렇게 기자·방청객이 있는 곳에서 공개하고 명예훼손·흠집내기를 하고 있다.

 임관혁 검사=말씀 중 죄송하지만 정치적 발언이다.

 한 전 총리=재판 중에도 수사를 하느냐. 재판장께서는 피고인의 인권을 생각해 달라.

 신응석 검사=피고인(한 전 총리)의 동생이 (문제가 된 한만호씨의 9억원 중) 1억원을 수표로 썼는데 아직도 경위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 아니냐.

 한 전 총리가 왜 직접 나서게 됐을까. 검찰이 새로운 증거로 한 전 총리와 그 남편의 계좌에 대해 사실 조회를 신청하면서 입출금 관련 의혹 등을 담은 표를 프레젠테이션 자료 형태로 법정에서 제시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한 전 총리 측에 또다른 의혹에 대한 해명도 요청했다.

 임 검사=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2009년 5월 발행한 외환은행 수표 1100만원 중 1000만원이 한 전 총리에게 갔다. 이 중 한 장은 한 전 총리의 지인, 3장은 남동생 계좌에서 발견됐는데 나머지 6장은 어디에 있는지 사실조회를 신청한다.

 검찰은 이날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한씨가 의정부 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을 당시 면회 온 어머니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 등이 녹취된 CD도 추가 증거로 신청했다. 특히 한씨를 신문하면서 CD 내용을 직접 들려주려고 했다.

 신 검사=(한씨에게) 2009년 5월 18일 어머니가 면회 왔을 때 ‘한 전 총리의 측근 김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한 전 총리와 상의해서 연락 주겠다더라’고 말한 사실이 있지 않나.

 한씨==기억이 안 난다.

 신 검사=접견 녹취 내용을 이 자리에서 재생하겠다.

 그러자 한 전 총리의 변호인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김진 변호사=(일어서며) 증인의 기억을 돕기 위해서라면 증인에게만 들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 언론 등에 공개된 법정에서 내용을 제시해선 안 된다.

 신 검사=녹취 CD는 변호인 측에서 먼저 요청해 법원이 사실조회를 통해 받은 것 아니냐.

 백승헌 변호사=적법한 절차를 통해 채택한 증거가 아니다. 일부라도 내용 공개는 안 된다.

 임 검사=법에 따라 수감자 접견 때 대화 내용이 무인 녹음된다. 한씨가 계속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하니 제시하는 것이다.

 조광희 변호사=왜 증거 채택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공개하나. 방청객과 언론에 “우리 검찰에게 이런 무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아니냐.

 한씨도 나섰다.

 한씨==구치소 있을 당시 접견 내용과 편지를 검찰에서 다 본다고 생각했다. 그걸 감안해서 검찰을 안심시키려고 말했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

 신 검사=이 사건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2009년 접견 내용은? 한씨의 주장은 거짓이다.

 “아우~.” 방청객에서 누군가가 짜증 섞인 소리를 냈다. 서울지법 형사22부 김우진 재판장은 정색을 했다.

 재판장=법정에서 재판에 영향을 주는 의도적인 반응을 삼가 달라. 따르지 않는 분은 퇴정시키겠다.

 이날 법정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재판 30분 전 법정 문이 열리자마자 자리가 꽉 찼다. 피고인석에 물을 가져다 주려던 법원 직원이 사람들을 뚫고 들어오지 못해 결국 방청객들이 손에서 손으로 생수병을 전달할 정도였다. 혼잡 속에 검찰에 대한 야유도 적지 않았다. 재판장이 거듭 제지해야 했다.

 재판장=검찰 주장에 대해 변호인이 검토할 시간을 갖기 위해 오후 3시20분부터 한 시간 동안 휴정하겠다.

 휴정 중인 오후 4시 서울중앙지검. 윤갑근 3차장이 검찰 출입 기자들에게 녹취 CD의 내용을 일부 설명했다.

 윤 차장=2009년 5월과 6월 세 차례에 걸쳐서 한씨가 면회 온 어머니에게 ‘한 전 총리 측에 3억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한씨와 돈이 오간 적이 없다’는 한 전 총리 측 주장과 다르다.

 오후 6시부터 본격적인 검찰 신문이 시작됐다. 녹취 CD를 틀거나 녹취록을 한씨에게 제시하는 대신 검찰은 녹취 내용을 신문에 포함시켰다.

 신 검사=어머니가 면회 왔을 때 ‘한 전 총리에게 3억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한씨==어머니께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 과장해서 한 말이다.

 신 검사=일산의 고교 동창이 면회 왔을 때 정치권에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하지 않았나.

 한씨==이해찬 전 총리 등이 일산 쪽에 오는지 한번 물어본 것이 전부다.

 이날 재판에는 한씨 외에 3명의 검찰 측 증인이 더 출석했다. 지난달 20일 2차 공판에서 한씨는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적은 없고, 9억원 중 5억원을 건설 공사 수주 사례금으로 김모·박모씨 등에게 줬다”고 진술했었다. 이 때문에 김모씨 등이 한씨와의 대질 신문을 위해 출석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법정 공방이 이어져 증인 대질은 다음 기일로 미뤄졌다.

글=구희령 기자
스케치=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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