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狡兎三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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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토(兎)는 토끼의 생김새를 본떠 만들었다. 쫑긋한 귀, 날렵한 몸매, 짧은 꼬리 등. 그래서인지 토끼의 모양을 빗댄 성어(成語)가 적지 않다. ‘토끼 꼬리(兎子尾巴)’는 ‘오래갈 리 없는 일’을 가리킨다. ‘토끼 꼬리가 길 수 없기(兎子尾巴長不了)’ 때문이다. ‘토각구모(兎角龜毛)’란 말도 있다. 토끼에게 뿔이 솟지 않고 거북에게 털이 날 리 없듯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을 일컫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을 가리키기도 한다.

 토끼는 개(狗)와도 곧잘 짝을 이룬다. 견토지쟁(犬兎之爭)은 쓸데없는 다툼을 가리킨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동곽준(東郭逡)이라는 발 빠른 토끼와 한자로(韓子盧)라는 날랜 사냥개는 높은 산을 다섯 번이나 오르내리며 내달리다 둘 다 지쳐 나자빠지고 만다. 이때 길 지나던 농부가 모두 챙겨 횡재했다는 이야기다. 어부지리(漁父之利)와 비슷한 쓰임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에선 인생의 비애(悲哀)가 묻어난다. ‘날랜 토끼가 죽으면 좋은 개가 삶기고,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이 들어간다(狡兎死 良狗烹 飛鳥盡 良弓藏)’고 한 한신(韓信)의 때늦은 후회에서 나온 말이다. 필요할 때는 요긴하게 쓰이던 물건이 그 효용을 다하고 나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건 시대를 막론한 불문율이 아니던가. 그래서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하는 것(兎死狐悲)’이리라.

 그러나 토끼가 언제나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는 건 아니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 했다. 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개씩이나 파놓고 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해서도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난이 닥치기 전에 미리 그 위험을 헤아려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토끼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쓰러지기만 기다리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요행이나 멍청함은 피해야 할 일이다. 토끼는 결코 자기가 파놓은 굴 옆에 난 풀을 뜯어 먹지 않는 법이다(兎兒不吃窩邊草).

 토끼 해가 밝았다. 많은 새해 계획을 세우게 마련이다. ‘시여처녀 후여탈토(始如處女 後如脫兎)’를 덕담으로 올리고 싶다. 시작할 때는 처녀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처럼 조신하게 일을 추진한다. 그러다가 기세를 잡은 뒤에는 토끼가 뜀박질하듯 맹렬한 기세로 신속하고 과감하게 일을 처리해 성공을 거두시라는 뜻에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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