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 라르손 … 그는 떠났지만, 세상은 그의 책과 열애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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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신드롬’을 일으킨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 그의 『밀레니엄』 3부작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잇는 글로벌 히트작이다. 작가는 출간 6개월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뿔 제공]


지금 지구촌 독자들이 『밀레니엄』 3부작에 푹 빠져있다. 50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1954~2004)이 쓴 스릴러 소설이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지났지만 책은 2005년 스웨덴에서 1부가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세계에서 5000만 부나 팔렸다. 이중 미국에서 판매된 분량만 1400만 부다.

 미 일간지 USA투데이는 15일 ‘독자들이 뽑은 올해 최고의 작가’로 라르손이 선정됐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에서는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판매량을 넘어서 ‘어른들의 해리포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라르손이 제2의 조앤 롤링인 셈이다. 스웨덴에서는 지난해 2월 영화로도 제작됐으며, 헐리우드에서는 ‘유주얼 서스펙트’ ‘세븐’ 등을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내년 12월 개봉을 목표로 촬영하고 있다. 가히 ‘밀레니엄 신드롬’이다.

 『밀레니엄』 3부작은 오는 1월 12일 국내 재출간될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대히트를 쳤지만, 한국에서는 고전을 겪었다. 2008~2009년 3부작이 완간됐으나 판매량은 1만부에 불과했다. 책을 낸 아르테 출판사는 현재 경영문제로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재출간이 국내 시장에도 밀레니엄 현상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소설을 각색해 스웨덴에서 제작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한 장면.

 ◆사회비평 추리소설=라르슨은 작가이기 전에 기자였다. 1983년 북유럽 최대의 스웨덴 통신사 TT에 입사해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상의 폭력에 관심을 갖고 인종차별과 파시즘·극우파 등 스웨덴의 사회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95년 좌파 잡지 ‘엑스포’를 공동창간하고 99년부터 편집장으로 일했다. 글을 통한 반(反)파시즘 활동으로 반대파의 암살위협에 시달려왔다고 한다. 열여덟에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동갑 여성 에바 가브리엘손을 만나 32년간 함께 살았다.

 『밀레니엄』 3부작은 라르손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됐다. 주인공은 자신을 닮은 잡지사 기자다. 본래 시리즈는 10부작으로 쓰여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라르손은 3부작(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 출간을 6개월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책은 시사월간지 ‘밀레니엄’ 편집주간 미카엘과 보안경비업체의 정보조사원 리스베트가 한 재벌의 손녀의 실종 사건을 함께 풀어간다는 내용이다. 집요한 탐구정신을 가진 기자와 문신과 피어싱을 한 여성 컴퓨터 해커가 사건의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과정을 그렸다. 부패한 기업인과 정치인, 성매매자들, 비겁한 기자들이 등장하는 작품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자본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올해 노벨상을 수상한 페루의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74)는 지난해 9월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에 기고문에서 “환상적이다. 잘 쓴 소설도 아니고, 결점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의 설득력이 강력하고, 확실하고, 예측이 불가능하고, 매혹적인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극찬했다.

 ◆극적인 개인사=2005년 스웨덴에서 출간될 때 출판사는 무명작가의 작품인 만큼 1만부만 팔려도 좋겠다고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거짓말 같은 대박이었다. 스웨덴에서 350만부 이상이 판매됐다. 인구 900만 명인 스웨덴에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상이 읽은 셈이다. 뿐만 아니다. 46개국과 판권 계약을 맺었고, 지금까지 30여 개국에서 출간됐다.

올 5월 뉴욕타임스는 “뉴욕의 독자들이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싣고 오는 배를 기다렸던 1840년대 이후, 독자들이 후속편을 열렬히 기다린 작품은 ‘해리 포터’가 유일했다. 요즘 『밀레니엄』 독자들이 후속을 기다리다 못해 한 달 먼저 출간된 영국에 책을 주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작가의 뒷얘기도 화제가 됐다. 라르손의 가족과 동거녀 가브리엘손 사이에 치열한 유산 다툼이 벌어졌다. 라르손과 32년간 함께 살았던 가브리엘손이 유산을 전혀 받지 못하는 대신 의절 상태였던 아버지와 동생이 유산을 차지했다. 스웨덴에서는 법적으로 결혼했을 때에만 유산상속권을 가질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법정 싸움은 몇 년째 지속돼 오고 있으며, 가브리엘손은 라르손과의 회고담(제목 미정)을 집필해 현재 프랑스·미국에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라르손의 전 동료와 친구들은 “글 솜씨가 없는 라르손이 작품을 직접 썼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70~80년에 라르손과 함께 일한 동료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통신사에서 라르손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사진설명도 제대로 쓰지 못했을 정도로 문장력이 형편없었다”고 말했다.

 『밀레니엄』 3부작은 한국 시장에서는 실패했다. 3년 전과 달리 이번 재계약이 추진됐을 때는 국내 대형 출판사들 간 경쟁이 치열했고, 저작권료(선인세)도 수십 배로 급등했다.

 재간본을 내는 출판사 ‘뿔’의 박상순 대표는 저작권료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보다 낮은 금액”이라고만 전했다. 『1Q84』의 저작권료는 약 100만 달러 내외(14억 원)로 추정된다. 박 대표는 “기자가 쓴 소설이라 문장이 시적이지는 않지만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가독성이 뛰어난 편이다. 내년 1~3월 3부작 6권을 완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밀레니엄』 3부작은 …

■ 2010년 7월, 아마존 킨들(전자책) 다운로드에서 첫 밀리언셀러 기록

■ 영국 700만 부, 미국 1400만 부 판매(전 세계 5000만 부 판매)

■ 2009년·2010년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1위

■ 미 USA투데이 ‘2010 올해의 작가’ ‘독자들이 뽑은 올해 최고의 책’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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