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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한국식 ‘패싸움 국회’의 비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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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상익
우석대 교수·서양사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선정한 ‘2010 올해의 사진’에 여야 의원들이 예산안 처리를 놓고 국회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 등이 포함됐다. WSJ는 홈페이지에 ‘올해 주요 순간과 뉴스를 전해주는 사진’을 월별로 9∼18장가량 소개했는데, 여기에 지난 8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민주당의 봉쇄를 뚫고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하는 사진이 실린 것이다. 네티즌 사이에선 “국회의원들 업적이 늘었다. 세계적 언론에서 선정한 올해의 사진이라니. 한국의 국격을 드높였다”는 비아냥거림이 줄을 이었다.

 의회 정치가 태동한 이래 의회 내 폭력 사태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정치가 성숙하면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한국식 ‘패싸움 국회’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됐다. 미국은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의회 내에서 간혹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우리 같은 집단 패싸움이라기보다는 법안 심의 과정에서 일어난 개별 의원 간의 주먹 다툼이 주류를 이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의회에서 비난과 야유는 지금도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해 한국·대만·우크라이나·호주와 함께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무질서한 의회’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물리적 폭력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여야가 서로 마주 보는 독특한 의석 배치 구조에서 홀 가운데에 두 줄의 붉은색 ‘소드 라인(Sword Line)’이 그어져 있다. 여야 의원은 서로 이 선을 넘지 못한다. 긴 칼을 휘둘러도 상대방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할 수 없도록 간격을 뒀다고 해서 소드(칼)의 라인으로 불린다. 간혹 여야 간 공방이 격화돼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져도 의장이 “질서(order)”를 두어 번 외치면 수습된다. 뜨거운 공방과 야유, 조소가 오가지만 물리적 폭력이 동원되는 경우는 없다.

 한 괴테 연구가는 “괴테와 보통 사람의 차이는 보통 사람과 원숭이의 차이와 같다”고 말한다. 괴테를 흠모하는 마음이 고조된 나머지 해본 말이겠지만,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의미만은 분명히 와 닿는다. 사실 서양에서는 기독교 쪽으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비기독교 쪽으로는 괴테를 최고의 정신으로 꼽는 견해가 있다.

 학창 시절 들었던 다석 류영모 선생의 강연 내용이 생각난다. 칠판에 영어로 ‘man, human, humane’을 쓰고 인간의 3단계 성장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사람(man)으로 태어나 인간(human)으로 성장하고, 다시 자애로운 인격(humane)으로 거듭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정신적 성장 단계가 다르다는 뜻으로도 새겨진다.

 정치인이 사람 될 확률은 정자(精子)가 사람 될 확률보다 낮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정도로 일부 정치인의 정신세계는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여당 대표께서 한 건 했다. 취재하던 여기자 3명과 오찬을 하던 자리에서 “요즘 룸(살롱)에 가면 (남자들이) ‘자연산’을 찾는다고 하더라”고 했다. 여성 비하 발언 여부는 차치하고, 어떻게 딸 같은 여기자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룸살롱을 화제로 올릴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보온병’ 사건에 대한 자평(自評)도 걸작이다. “이번에 수능 끝난 고3 학생을 대상으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내가 ‘안녕하세요, 보온병 안상수입니다’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다들 옆사람을 치고 웃으면서 죽더라 죽어. 그래서 보온병 폭탄 파문이 그렇게 나쁜 영향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을 상황을 오히려 명성이 높아지는 기회가 되었다고 자랑하는 의외성은 시쳇말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이러고도 소통의 정치가 가능할까.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19세기 영국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은 “지위와 명성은 한낱 등불일 따름이어서 사람을 비춰줄 뿐이지 더 훌륭한 사람(인격)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물의를 일으킨 정치인들은 그들의 지위와 명성을 인격 완성의 증좌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자부하기에 저토록 거침이 없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지위와 명성은 그들에겐 축복이라기보다는 불행이지 싶다. 성숙의 기회마저 막힌 채 폭력성과 본능을 주체 못하는 질풍노도의 사춘기에 평생 머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렴 그들의 불행이 그들을 지도자로 떠받들고 사는 국민의 불행만 할까.

박상익 우석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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