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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위기의 아들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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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요즘 남자 중·고교 근처 집값이 금값이라고 한다. 남녀공학에 보냈다간 공연히 내신에 손해 볼까 싶어 아들 가진 학부모들이 몰리는 탓이다. 포털 게시판마다 “남자 중학교, 고등학교 보내려면 어디로 이사 가야 좋을까요?” 식의 질문들이 넘쳐난다. 하긴 똑똑하고 야무진 딸에 비해 덜 떨어지고 산만한 아들에 대한 하소연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못 된다. 우리 아들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알파 걸들에게 주눅 든 내 아들을 지켜라(원제 Boys Adrift)』의 저자 레너드 삭스는 조기 교육 붐을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가 1990년대 초부터 어린이들의 뇌 발달 과정을 쭉 살펴보니 성별에 따라 큰 차이가 나타났다고 한다. 다섯 살배기 남자아이 뇌의 언어 영역은 세 살 반 된 여자아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유치원 동급생이라도 수준 차이가 큰데 똑같이 쓰기·읽기를 가르치니 “공부 싫어” “학교 싫어” 하며 뒤처지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1년쯤 늦게 유치원을 보내는 편이 낫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성실성에서도 남자 애들은 밀릴 수밖에 없다. 여자 애들은 교사·부모 등 어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본능을 지녔기에 지루한 숙제라도 꾹 참고 열심히 해낸다.

 ‘위기의 소년’들이 자라 ‘위기의 남성’이 된다. 2006년 뉴욕 타임스는 돈 버는 데도 관심 없고 데이트보다 비디오 게임을 더 즐기는 남자들 기사를 1면에 실은 적이 있다. “그는 게임을 일주일에 15시간으로 줄인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전 그 시간만큼 아르바이트를 한다고요”라는 여대생 인터뷰와 함께. 미국 독신 가정 수가 기혼 가정을 역전한 것도 한심한 남자들과 엮이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단 여자들이 늘어서라고 한다.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국내 웬만한 입사 시험에선 남자들을 위한 ‘할당제’가 필요할 정도라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초등·중학교 교과서의 성차별이 심각하다고 여성가족부가 밝혔다. 교과서 속 위인 열 명 중 아홉 명이 남성인 데다 ‘남자=적극적’ ‘여자=수동적’ 식의 고정관념이 담긴 대목이 많다고 한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얼른 바로잡는 것이 마땅할 터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냥 놔둬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혹시 아나. “옛날엔 남자들이 더 잘 나갔었네” 하며 우리 아들들이 분발하려는지.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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