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태진 기자의 오토 살롱] 재규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1980년대까지 고급차 하면 유럽의 벤츠·BMW·재규어, 미국 캐딜락이 대표됐다. 좀처럼 변화가 없는 이 시장에 90년대 변화가 생겼다. 고급차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던 아우디가 급부상했고, 도요타가 렉서스를 출시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의 등장으로 시장을 뺏긴 게 영국 재규어와 미국 캐딜락이었다.

 재규어는 50년대부터 영국 귀족의 전용차로 유명했다. 긴 선으로 대표되는 우아한 디자인과 레이싱의 전통을 되살린 고성능으로 독일차와 차별화했다. 특히 재규어는 창업자 윌리엄 라이언스 경의 이름을 딴 ‘라이언스 라인’이라는 디자인을 고수했다. 네 개의 원형 헤드라이트와 우아한 보닛의 곡선은 멀리서 봐도 재규어임을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재규어는 22년 모터사이클 옆에 다는 사이드카 제작사인 ‘스왈로’가 모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레이싱에서 발군의 성적을 내면서 고급차로 변신했다. 당시 유럽 자동차 경주는 4개국이 경쟁했다. 영국은 재규어를 대표하는 녹색, 독일은 은색, 이탈리아는 레드, 프랑스는 블루를 상징했다. 재규어는 ‘C타입’ ‘D타입’ 경주차로 50년대 다섯 차례나 르망 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머쥔다. 시상대를 녹색이 점령한 것이다. 레이싱에서 명성을 쌓은 재규어는 68년 라이언스 경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대형 세단 ‘XJ6 설룬’을 출시하면서 고급차 반열에 오른다. 최고급 모델인 ‘XJ’의 모태가 된 차다.

 순항하던 재규어는 80년대 영국병의 희생양이 된다. 악화된 노사관계로 품질 불량이 이어지면서 90년 미국 포드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볼보·마쓰다까지 장바구니에 담은 포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이들 차체를 이용해 재규어 신차를 내놓은 것이다. 재규어의 고급 이미지가 손상됐고 정체성까지 흔들렸다.

 2007년은 서광이 비친 해다. 포드가 경영이 어려워지자 재규어를 인도 타타에 매각한 것이다. 이어 그해 이언 컬럼이 재규어 디자인 총괄로 부임한다. 페라리에 버금가던 영국 스포츠카 애스턴 마틴을 멋들어지게 살려냈던 그는 손상된 재규어의 이미지를 대수술했다.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단장한 스포츠 쿠페 스타일의 ‘XF’를 내놓았다. ‘재규어 이름만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꿨다’는 평가를 받으며 ‘XF’는 인기를 모았다. 올해 초 나온 컬럼의 두 번째 작품인 대형 세단 ‘XJ(사진)’도 히트를 이어갔다. 100% 알루미늄 차체로 경쟁 모델보다 100㎏ 이상 가벼운 게 특징이다. 한국에서도 재규어는 올해 전년 대비 30% 이상 판매가 증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김태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