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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남편, 뇌종양 아들 … “그래도 기부할 수 있어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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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8년째 매달 1만원을 보내는 김희영씨가 떡볶이를 만들고 있다. 김씨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지만 ‘1만원의 행복’ 덕분에 희망을 잃지 않고 산다고 말한다. [인천=조용철 기자]

‘불행은 겹쳐 온다’는 말이 있는데 김희영(53·여·인천시 용현동)씨가 그런 경우다. 아들은 뇌종양, 남편은 뇌출혈, 본인은 무릎·팔꿈치 관절 수술…. 그런 김씨의 삶을 지탱하는 힘은 ‘1만원의 행복’이다. 배우 김혜자씨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는 장면을 봤을 때, 애들이 1달러가 없어 굶주리고 병든다는 사연을 접했을 때 마음이 아팠다. 2002년 월드비전을 통해 그런 애들에게 매달 1만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8년째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있다.

 김씨의 삶은 굴곡이 심하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고아처럼 자랐다. 2000년 멀쩡하던 아들 재영(17)이 뇌종양으로 얼마 못 산다는 판정을 받았고, 2005년에는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왼쪽 팔다리가 마비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치료비로 수억원이 들어갔고 빚이 쌓였다. 집도 내놨다. 다행히 재영이는 기적같이 병마와 싸우며 살고 있다.

 길거리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던 김씨는 2005년 동네에 조그만 떡볶이 가게를 열었다. 유일한 생업수단이다. 월 70만~80만원 정도 번다. 그런 김씨에게 1만원은 작은 돈이 아니다. 그만둘까 고민도 했었다.

 “일에 지쳐 집으로 왔을 때 남편과 자식의 모습을 볼 때면 사는 게 힘들어요. 그렇지만 1만원을 끊으면 몇 명의 아프리카 애들이 다시 굶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그럴 수 없었어요. 작은 돈이지만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 몇 명을 먹인다고 생각하니 힘이 나요.” 김씨는 “힘들게 살아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힘든 삶을 외면할 수 없다”며 “할 수 있는 한 계속 1만원을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24일 김씨를 포함한 기부천사 150명이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오찬을 했다. 이날 초청된 사람 중 여유 있게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초수급자·치킨집 주인·택시기사·보육원생 등 어렵게 사는 우리 이웃들이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 임대아파트에 사는 김남수(87) 할머니는 독거노인이다. 애를 낳지 못하고 젊을 때 이혼해 혼자가 된 기초수급자다. 2008년 4월부터 굿네이버스에 1만원을 후원한다. 어릴 적 배를 곯았던 슬픈 기억이 생각나 어려운 애들한테 한 끼라도 도움이 되려고 시작했다. 김 할머니한테 가는 생계보조금은 월 35만원. 이 돈으로 생활비와 공과금을 쓴다.

 김 할머니의 첫마디는 “창피해요. 너무 창피해서 누구한테 말도 못 해요”였다. 기자와 통화 내내 “과자값도 안 돼요”를 반복했다. 할머니는 올해 1만원을 더 기부하려 했다. 하지만 몸이 아파 그러지 못한 점을 못내 아쉬워한다. 할머니는 “몇 달 도와주다 끊기면 도움을 받던 애한테 실망을 줄까 못 했다”며 “새해에 건강이 유지되면 더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면마비·뇌종양 등으로 자기 몸을 추스르기 힘든 환자도 나눔에 열성적이다. 지현숙(56·여·서울 흑석동)씨는 정부의 생계보조금 32만원을 아껴 서울대병원에 1만원, 유니세프·집수리봉사단 등 3곳에 각각 5000원을 매달 기부한다. 지씨는 보일러 없는 낡은 집에서 난로로 추위를 견딘다.

 또 매일 독거노인에게 450개의 도시락을 만들어 전달하는 박영미(44·여·전북 정읍)씨, 치킨 한 마리를 팔 때마다 500원을 기부하는 강성자(44·여·서울 성북구)씨, 퇴직수당의 2%를 기부한 집배원 김철수(59·서울 강북구)씨, 차 안에 저금통을 마련해 기부를 독려하는 개인택시 기사 김형권(64·서울 동대문구)씨 등이 참석했다.

글=신성식 선임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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