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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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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노인 운전자가 모는 차에 치여 죽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모든 노인에게 운전면허를 반납하라는 명이 떨어지고 일부가 무면허 운전으로 맞서다 감옥에 갇힌다. 이때 전격 구출작전에 나선 건 다름 아닌 미국퇴직자협회(AARP). 공중 투하된 회원들이 수감자들을 풀어준 뒤 3대 요구사항을 내건다. “운전면허를 돌려줘라.” “건강보험 혜택을 늘려달라.” “애들이 길에서 스케이트보드 타는 걸 금지하라.”

 2003년 미국에서 방영돼 화제를 불렀던 TV 만화영화 ‘잿빛 새벽(Grey Dawn)’ 얘기다.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들의 시대가 열림을 빗댄 제목이다. 4000만 명 이상의 퇴직자 회원을 둔 AARP는 영화에서뿐 아니라 실제로도 노인 권익 옹호의 기수를 자처한다. 2007년만 해도 ‘흩어지면 죽는다(Divided We Fail)’란 대대적 캠페인을 펼쳐 대선 후보들을 압박했었다.

 미국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휘몰아칠 ‘고령화 쓰나미’로 비상이다. 베이비붐 세대(1946~64년생)의 맏형 격인 46년생이 노인용 공공 건강보험 ‘메디케어’와 연금 혜택을 받는 65세가 되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 규모인 이들 세대 8000만 명이 차례로 노년층에 진입하는 걸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최대 유권자 그룹이기도 한 이들 눈치를 보느라 재정을 파탄 낼 입법이 잇따를 거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고령화가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된 일본과 유럽에선 이미 우려가 아닌 현실이다. 일본에선 노년층의 의료보험 부담을 늘리려다 지난해 정권이 바뀌었다. 최근 연금 개혁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은 프랑스·그리스는 또 어떤가. 10여 년 전 피터 G 피터슨 전 미국 상무장관의 경고를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보다 지구고령화(global aging)가 더 심각한 위기다. 온난화처럼 전 세계가 공동의 해법을 강제해 개별 국가의 정치적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그럴 기회를 놓친 각국 정부의 골치가 여간 아픈 게 아니다. 22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새해 업무계획에도 고민이 엿보인다. 당뇨·골다공증 치료제까지 건강보험을 적용해 노년층을 달래는 한편 동네병원을 ‘주치의’로 지정해 노인들의 습관성 의료 쇼핑을 막겠다는 식이다. “틀니도 보험 적용 해달라” “장기요양보험 대상을 더 늘려라” 노인들 요구는 갈수록 커지는데 선거는 다가오고…. 참 큰일이다.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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