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나인’이 전셋값 급등 주도 “내년 봄 또 대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7호 22면

‘입주 2년 징크스’로 전셋값이 크게 오른 잠실리센츠 아파트 단지 모습. 2년 전 2억6000만원 선이던 109㎡짜리 전세가 최근 4억3000만원가량으로 치솟아 세입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신인섭 기자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리센츠 아파트. 간밤에 내린 눈으로 아파트 단지 전체가 하얗게 덮여 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주민들의 발걸음은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대형 이삿짐 차량의 움직임은 분주하기만 하다. 단지 한가운데 위치한 초등학교에선 어린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담장 밖까지 활기차게 울려퍼진다.

주택시장 바닥론 현장에서 봤더니 ③전셋값 오름세 언제까지

옛 잠실주공 2단지를 재건축한 이곳은 아파트 65개 동에 5563가구가 모여 있다. 2008년 하반기에 본격적인 입주가 이뤄져 최근 입주 2년을 맞았다. 초·중·고교(잠신초·잠신중·잠신고)가 모두 단지 안에 있어 잠실에서도 교육 환경이 좋은 곳으로 꼽힌다. 단지 북쪽으로는 올림픽대로와 한강 시민공원에 접해 있고 일부 고층 아파트에선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단점이라면 단지 내 상가가 아직도 문을 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하철 역 앞에 상가를 짓긴 했지만 아파트조합과 상가조합의 분쟁으로 입구엔 자물쇠가 채워진 채 빈 건물로 남아 있다.

서울시청이 운영하는 인터넷 부동산정보광장(land.seoul.go.kr)에 따르면 올 하반기 잠실리센츠에서 전세 거래는 모두 136건으로 잠실지역 아파트 단지 중 최다를 기록했다. 세입자가 전세계약서를 들고 동주민센터에 찾아가 확정일자를 신고한 건수를 집계한 것이다. 아파트 면적별로는 109㎡(약 33평)짜리가 세 건 중 두 건꼴(6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방 세 개와 욕실 두 개로 4인 정도 가족이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규모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109㎡짜리의 전셋값은 최근 2년 사이에 1억5000만~2억원이나 치솟았다. 국민은행이 조사한 아파트 시세를 살펴보면 입주 초기였던 2년 전에는 2억6000만원 정도면 109㎡짜리의 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같은 크기의 아파트 전세를 얻거나 전세 계약을 갱신하려면 4억3000만원가량은 줘야 한다.

리센츠와 비슷한 시기에 입주한 잠실엘스(옛 잠실주공 1단지) 아파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5678가구가 있는 잠실엘스의 109㎡짜리 전셋값은 2년 전 2억5000만원 수준에서 최근에는 4억원 이상으로 올랐다. 그러다 보니 2007년 입주한 잠실트리지움(3696가구, 옛 잠실주공 3단지)과 레이크팰리스(2678가구, 옛 잠실주공 4단지)의 전셋값도 동반 상승했다.

잠실에서 전셋값이 급등한 이유는 ‘입주 2년 징크스’로 요약할 수 있다. 통상 대단지 아파트의 입주 초기에는 전세 공급이 넘쳐난다. 실수요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산 사람들은 전세 세입자를 구해야 분양잔금을 치를 수 있어서다. 전세를 놓으려는 사람에 비해 세입자가 적은 만큼 자연스럽게 전셋값도 낮은 수준에서 형성된다. 2008년 말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겹치면서 전셋값이 더욱 낮아졌다. 세입자 입장에선 일종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입주 2년이 지나 전세 계약을 갱신할 때가 오자 집주인과 세입자의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집주인들은 주변 시세를 감안해 ‘제값’을 다 받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비교적 싼값에 살았던 세입자들은 치솟은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웬만한 중산층이라도 한꺼번에 1억원 이상을 현금으로 마련하기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잠실3동에서 영업하는 우리공인중개사 송은아 대표는 “잠실은 교육 여건이 좋아 자녀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고, 지하철 2호선 역세권으로 대중교통도 편리하다”며 “항상 이사를 나가려는 사람보다 들어오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저렴한 전셋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전셋값 인상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사간 세입자도 많지만 대안으로 전세 보증금이 오른 부분을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도 크게 늘었다”고 소개했다.

과천시 전셋값 2년간 40%나 올라
최근 전셋값 상승세는 과거에 비해 지역별로 편차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국민은행 부동산조사팀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서울에서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송파구(29.6%)였고, 다음은 강동(26%)·서초(24.2%)·광진(23%)·강서구(21%)의 순이었다. 반면 은평(4.1%)·강북(6.7%)·서대문(6.9%)·금천구(7%) 등은 전셋값 상승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강동·서초구의 전셋값 급등은 송파구와 마찬가지로 ‘입주 2년 징크스’에 걸린 아파트 단지가 많았던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광진구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송파·강동구와 가까운 지리적 여건이 전셋값을 크게 올린 배경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송파·강동구에서 저렴한 전셋집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한강을 건너 광진구로 옮겨간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역시 송파·강동구와 인접한 경기도 하남시에서도 최근 2년간 전셋값 상승률이 33.8%나 됐다.

경기도에서 최근 2년간 전셋값 상승률 1위는 과천시(40.9%)가 차지했다. 경기도 동부의 구리시(24.5%), 남부의 화성시(24.1%)에서도 전셋값이 비교적 크게 올랐다. 수도권에서 전셋값이 20% 이상 오른 시·군·구는 모두 아홉 곳에 달했다. ‘버블 나인’이 전셋값 상승을 주도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북부의 동두천시(-2.1%)에선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하락했으며, 이천시(0%)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고양시 일산서구(2.1%)와 동구(3.3%) 등은 소폭 상승에 그쳤다. 인천에선 연수구(16.4%)의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른 반면 동구는 2.1% 상승에 머물렀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닥터아파트의 김주철 리서치팀장은 “올 들어 주택 매매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당분간 주택 구입을 미루고 전세로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이런 사람들이 교통과 교육 여건이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하면서 해당 지역은 전셋값이 크게 올랐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년 같으면 12월이면 전세 비수기에 해당하는데 최근 분위기를 보면 거래가 비교적 활발하고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다”며 “내년에 전셋값이 더 오를 것에 대비해 미리 전셋집을 구하려는 수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개업소 81% “전세 수요>공급”
전문가들 사이에선 서울과 경기권의 경우 내년에도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건설산업연구원의 허윤경 연구위원은 지난달 ‘2011년 건설·부동산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내년 주택 전세가격은 올해보다 3~4%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내년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감하는 것을 전셋값 상승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0만9000가구로 올해에 비해 36%나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경기도는 4만7000가구로 올해(11만5000가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은 3만9000가구로 올해(3만7000가구)보다는 약간 많지만 최근 10년간 평균(5만3000가구)과 비교하면 26%나 적은 수준이다. 다만 인천(2만3000가구)은 올해(1만8000가구)보다 입주 물량이 5000가구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공급에 영향을 미칠 두 번째 변수는 재건축·재개발을 위한 주택 철거 물량이다. 허 연구위원은 “이미 사업시행 인가나 관리처분 단계에 들어가 주택철거의 가능성이 높은 수도권 재개발 단지수는 96개나 된다”며 “사업 시기를 늦춰왔던 재건축 단지들도 추가적으로 철거에 들어가면 멸실주택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멸실 물량의 영향력은 서울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따라 인근 지역의 전세가격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세 공급 감소에도 불구하고 대기 수요는 여전히 강한 상황이다. 국민은행이 이달 중순 전국의 중개업소 2700여 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세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는 응답이 81%에 달했다. 서울의 경우 ‘수요 초과’라고 응답한 비율은 75.7%였다. 전국 평균보다는 낮지만 최근 5주 연속 상승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울 전세시장에선 사실상 12월 비수기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특히 2년 전 같은 조사의 응답 비율(9.4%, 서울 기준)과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집값에서 전셋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달 44%로 2005년 말(48.4%)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아졌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봄에는 자칫 ‘전세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세 계약은 보통 2년 주기로 맺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내년 봄에 계약을 갱신하려면 2년치 전셋값 상승분을 한꺼번에 내야 한다. 특히 2009년 봄은 ‘역전세난’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로 전셋값이 약세를 보였던 시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스피드뱅크의 김은진 리서치팀장은 “최근 전세난은 잠실 등 입주 2년 아파트가 많은 지역이 중심이 됐지만 내년 봄에는 전반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 입주 물량 감소 등으로 전셋값은 당분간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며 “2년 전 전셋값이 비교적 저렴했던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내년 봄 세입자들의 체감 상승률은 엄청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