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역정당은 '역사 거꾸로 돌리기' - 강재섭의원

중앙일보

입력

한나라당 강재섭(대구 서을)
의원은 지난해 8월 총재 경선 출마를 중도 포기한 후 언론과의 접촉을 가급적 피하고 있다. 충분한 세와 명분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깃발을 올리려다 만 후 근신을 자처한 것이다.

개인적 활동은 최대한 줄이는 대신 한나라당 대구시지부장직에는 열심이다. 동료 의원들의 후원회 행사 등 서울과 대구를 오르내리며 당의 각종 모임에 참석하느라 바쁘다. 그는 “요즈음 낚시를 하는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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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는 자주 가십니까.

“1주일에 한번 정도는 내려갑니다. 시지부장 자리라는 게 학교의 반장과 비슷합니다. 급우들 일도 챙기고 선생님이 부르면 달려가야 하고…. 가을 들어 의원 후원회 행사가 많아지면서 부쩍 더 바빠진 것 같습니다.”

─시지부장 입장에서 내년 총선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현재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야당으로의 표몰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지역감정이든 ‘반 DJ 정서’든 집권 여당에 대한 여론이 아주 안좋거든요. 한나라당으로서야 선거 치르기에 더이상 좋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나라와 정치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죠.”

─김대중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지역화합’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신 그러한 정서가 여전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였던 김대통령은 지역감정을 해결하겠다고 공약했고, 국민이 그것을 기대한 것도 사실입니다. 취임 후 김대통령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노력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은 것은 김대통령이 진심이 없었거나, 국민이 둔해서 그 진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전자라고 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이것을 풀려면 가히 혁명적인 행동을 보였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 김대통령을 왜곡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정말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도록 해야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고 봅니다. 대구·경북 주민들은 김대통령의 그러한 약속이 립 서비스 차원에서 그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이 어떤 혁명적인 행동을 보였어야 합니까.

“다가올 선거도 중요하고 고생한 사람들 챙겨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그러한 데 매달리느라 큰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인사문제도 자잘한 수를 써서는 안됩니다. 좋은 일 할 때, 생색나는 자리에 사람을 고루 써야죠. 그래야 그 지역 주민들한테도 ‘정말 우리를 배려해 준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신당을 창당하면서 누구를 차출해 총대를 메게 하는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지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닌데야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지역 정서는 또다른 이기주의이고, 일부로부터는 ‘권력의 금단현상’이라는 혹평도 받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도 직시해야 합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은 사법처리하겠다는 식의 소아병적 발상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한나라당이 높은 지지를 얻고 있지만, 그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진정한 지지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 않은데요.

“한나라당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만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대안정당으로서 이미지를 확고히 하지 못한채 한때는 끌려다니고, 한때는 싸우기만 한 것이 사실입니다. 뚜렷한 정치철학을 제시하고 그것을 위해 제대로 투쟁하지도 못했습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얹혀 당권투쟁과 당권 강화밖에 해온 게 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앞으로 반성하면서 고쳐나가야 할 부분들이죠.”

─내년 총선을 앞두고 TK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여·야를 뛰어넘어 TK 정치인들이 헤쳐모여 새로운 정치결사체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TK 정치인들이 중앙 정치무대에서 힘을 키워야 한다는 데는 공감합니다. 예를 들면 지역 출신들이 한나라당의 주축이 되자는 차원의 논의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지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신당, 언론에서 자주 얘기하는 ‘TK신당’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정서를 이용하자는 얘기밖에는 안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면서 지역 정서에 근거한 신당을 만든다는 것은 정치인이 해서는 안될 일이죠.”

─5공 인사들이 총선에 출마하고, 그것을 계기로 지역 원로급들이 조정자 역할을 하는 가운데 TK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할 신당이 출현한 여지도 있는 것 아닙니까.

“말씀의 전제가 되는 5공 인사들의 출마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고 봅니다. 정호용 전 의원이나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그동안 거론돼온 분들도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저는 듣고 있는데요.”

─지역구도를 허물기 위해서라도 중·대선거구제와 정당명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여권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고 정당명부제를 실시해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한나라당과 국민회의 의원이 각각 당선된다고 지역감정이 해소됩니까.

그러한 발상 자체가 정략적으로 비치는 것 아닙니까. 국민회의가 충청권 자민련 의원들의 반발 가능성이 높은 데도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려 하는 것은 어떻게든 당의 몸집을 불리고 보려는 자세로 비치기 십상입니다.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지니 초조해지고, 정당명부제를 도입해서라도 대통령의 친정체제를 강화하려 드는 게 쉽게 보이지 않습니까. 여권이 이처럼 정파적 이해관계에 얽매일수록 자기 함정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대구·경북의 내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압승하리라고 전망하십니까.

“지난해 지방선거 때 대구는 시의원 26명 전원이 한나라당으로 채워졌습니다. 지금의 한나라당 지지도는 그때보다 더 높습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상당한 성과를 얻지 않겠습니까. 국민회의나 자민련은 상당한 고전을 할 것입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오히려 신예 무소속들에 더 신경써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분위기를 타고 등장하는 무소속 신인들이 의외로 높은 지지를 얻을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종주 월간중앙 기자
월간중앙(http://win.joongang.co.kr) 제 287호 199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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