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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 그는 애플의 아버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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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은 애플의 영국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 조너선 아이브, 무지(Muji)의 후카자와 나오토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벽에 걸린 제품은 1965년에 제작된 오디오와 녹음기(TS45·TG60). [다모츠 시마다 촬영·대림미술관 제공]


“사람들이 제게 말하더군요. ‘애플(Apple)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당신 디자인을 베꼈어’라고요. 오, 그건 아닙니다. 애플의 디자인과 제 디자인이 연결돼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복제한 게 아니죠. ‘덜할수록 더 좋다(Less and More)’는 제 디자인 철학을 따른 거죠. 저에 대한 찬사라고 생각합니다.”

 산업디자인(Industrial Design)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디터 람스(78). 1950년대부터 디자인은 단순·명료·정직해야 한다고 주창해왔다. 55년부터 97년까지 독일 가전 명문 브라운의 얼굴로 일해왔다. 그의 팀이 빚어낸 제품은 현대 산업디자인의 분수령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장식성을 배제한 극도로 엄격한 스타일이 지금 보아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디터 람스가 한국에 왔다. 17일부터 내년 3월 20일까지 서울 대림미술관(www.daelimmuseum.org)에서 열리는 ‘Less and More- 디터 람스의 디자인 10계명’ 전시에 맞춰서다. 브라운 가전품, 덴마크 비에초 가구 등 400여 점이 선보인다. 16일 그를 만났다.

 - 디자인은 예술, 패션이 아니라고 말해왔다.

 “디자인과 예술이 연결돼 있는 것은 맞지만 디자인과 예술은 구별해야 한다. 디자인의 첫째 기능은 실용성이다. 각종 제품을 일상에서 잘 쓸 수 있도록 돕는 거다. 디자인은 기술과 함께함으로써 혁신적이 된다. 내가 디자이너로서 항상 경계한 것은 예술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 디자인의 기능을 강조하는 것인가.

 “그렇다. 제품 디자인은 대량 생산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제약을 정확히 알고 해결책을 찾는 행위다. 겉멋을 부리는 게 아니다.”

 - 당신의 ‘좋은 디자인을 위한 10가지 원칙’(일명 ‘좋은 디자인 10계명’)은 80년대에 정리됐다. 지금 수정하고 싶은 내용은.

 “‘10가지 원칙’은 디자인 학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2008년 오사카, 2009년 도쿄)과 독일(2009년 프랑크푸르트) 전시를 보면서 생각해봤는데 절대 바뀔 수 없는 원칙이라고 새삼 확인했다. 되레 과거보다 지금 더 중요해졌다고 믿는다. 지금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불필요한 것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

 - 조너선 아이브는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애플 디자인을 어떻게 보나.

 “맘에 든다. 애플과 아이브의 협력관계는 과거에 내가 브라운과 맺었던 관계와 닮았다. 디자이너와 기업의 강력한 결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는 기업의 목표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목표와 방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제품을 통해 구현해야 한다.”

 - 기업인들에게 당부할 것은 없나.

 “디자인은 마케팅 부서의 지시를 받는 팀이 돼선 안 된다. 디자인은 마케팅 전략의 하나가 아니다. 디자인은 기업의 철학과 비전을 담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기업의 오너와 CEO와 함께 기업의 방향을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

 -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도 한마디를.

 “디자인은 간단 명료해야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퀄리티(quality)다. 경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디자인은 문화고 미래다. 미래에도 살아남는 디자인은 정직하고 단순한 디자인이다. 군더더기를 붙이지 말고, 금방 버려지게 될 것을 만들지 마라. ”

 -현재 디자인을 리드하는 기업을 꼽는다면.

 “어디에서나 작지만 나름대로 일관성을 갖고 좋은 제품을 내놓는 기업들이 있다. 최고를 꼽는 것은 항상 힘들다. 그래도 대답을 해야 한다면 오로지 한 기업이 있다. 그것은 애플이다.”

이은주 기자

◆디터 람스=1932년 독일 비스바덴 출생. 목수였던 할아버지에게 목공을 배움. 비스바덴예술공예학교에서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 수학. 53~55년 건축회사 근무. 55년 브라운사 입사. 56년 한스 구겔로트와 함께 라디오·오디오 겸용 ‘SK4’의 혁신적 디자인으로 주목 받음. 60년 ‘606만능 선반 시스템’ 디자인(현재도 생산). 전시 ‘Less and More’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일본 오사카 산토리 미술관 공동기획 .

디터 람스의 ‘좋은 디자인 10계명’

① 혁신적이다

② 제품을 쓸모 있게 만든다

③ 아름답다

④ 제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⑤ 정직하다

⑥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는다

⑦ 오래 지속된다

⑧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⑨ 환경친화적이다

⑩ 최소한으로 디자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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