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로 바닷물 담수화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4면

산중공업이 중동에 수출한 해수 담수화 설비.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해수 담수화 설비와 스마트그리드를 결합하는 첫 실험이 내년 국내에서 펼쳐진다. [중앙포토]

홍준희 교수

흔히 지능형 전력망이라고 불리는 ‘스마트그리드(smart grid)’가 해수 담수화 설비와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강물을 이용해 수돗물을 생산할 때보다 더 값싸고, 깨끗한 물을 생산할 수 있다. 나아가 지구촌의 에너지 구조를 바꾸고, 물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듯한 에너지와 해수 담수화 간에 상생의 틀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제주도 성산포 북동쪽으로 3.8㎞ 떨어진 우도에서 이런 가능성을 점쳐볼 미증유의 실험이 내년 시작된다. 경원대 가천벨연구소와 두산중공업·제주도가 지난 주 이 실험을 하기로 합의했다. 가천벨연구소가 사업 아이디어와 사업비 20억원 중 18억원을, 두산중공업은 2억원과 해수 담수화 기술을, 제주도는 행정지원을 하기로 했다.

 사업 내용은 우도에서 가동 중인 해수 담수화 시설을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의 스마트그리드 시스템과 연결해 운영하는 것이다. 스마트그리드란 쉽게 말해 전기수요를 실시간 측정해 요금을 바겐세일할지, 아니면 비싸게 받을지를 자동으로 정해준다. 스마트그리드를 활용하면 우도 해수 담수화 설비 가동에 들어가는 연간 1억1000만원 상당의 전기료를 거의 한 푼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전기값이 아주 쌀 때인 새벽시간에 바닷물로 수돗물을 생산하고, 전기값이 절정인 한여름이나 한겨울 다소비 시간대에 가동을 멈추는 방법을 병행한다. 한국전력은 피크타임 때 공장 가동을 멈추면 ㎾h당 1100원 정도를 보상해 주고 있다. 2~3년 뒤 스마트그리드가 제주도에서 전면 실시되면 그 보상비만 받아도 우도의 담수 생산에 들어가는 전기료를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도는 지금까지 전기료 할인 시간대나 비싼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해수 담수화 설비를 가동해 왔다.

 강물로 만든 수돗물 원가는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t 당 900~1500원으로 추정된다. 바닷물로 만드는 우도는 1100원쯤 됐다. 우도의 해수 담수화 설비에 스마트그리드를 적용하면 그 원가는 t당 605원으로 절반 가까이로 쑥 주는 것으로 추정됐다. 더욱이 환경호르몬이나 중금속이 거의 없는 청정수다. 제주도가 앞으로 스마트그리드와 연동한 해수 담수화 설비를 대용량으로 가동하면 바닷물로 만든 수돗물은 일반 용수로 활용하고, 그만큼 남는 지하수 ‘제주 삼다수’를 비싼 값에 더 상품화할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와 해수 담수화 설비의 만남은 단지 물을 더 싸게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력 설비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은 원자력이 전체 소요의 40% 정도를, 나머지는 대부분 화력발전이 충당한다. 화력보다 값싼 원전을 100%까지 늘리지 못하는 것은 국민 정서 등 정치적 문제가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이 더 크다. 수요에 맞춰 원전 가동시간을 수시로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번 가동한 원전은 정지할 때까지 낮밤에 관계없이 전기를 꾸준히 생산해 내야 한다. 화력발전의 경우 전력 성수기나 하루 중 피크타임 때 가동하고 놀리는 경우가 많다.

 전국 주요 도시에 바닷물로 만든 물을 공급한다면 전기나 남거나 전력 설비를 놀리는 문제를 덜 수 있다. 남는 전력에 값싼 전기료를 내고 해수 담수화 시설을 돌리면 된다. 가천벨연구소의 홍준희 교수는 “스마트그리드와 해수 담수화 시설을 연동하는 모델은 해외에서도 물 부족, 에너지 효율, 기아 등 인류의 여러 난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스마트그리드=기존 전력 생산·유통 서비스에 정보기술(IT)로 효율성을 강화한 ‘똑똑한 전력망’이다. 전기 수요가 많을 때와 적을 때, 이에 따라 전기료를 비싸게 받고 싸게 받을 때를 실시간 파악해 전력 생산자와 사업자·가정 등 소비자 모두 이득을 볼 수 있게 만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